세례요한의 가르침
쿰란 공동체
삭개오의 구원에 대한 2가지 시선
눅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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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이름의 뜻:청결하다)는 키가 작았다.
유대 사회에 키가 작다는 기준은 150Cm 정도 이었다.
본문의 내용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여리고에 들으신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예수께서는 작정하고 여리고에 들으신 것이었다.
1절과 2절 사이에 원문 이도우(헬) = ‘보라’ 란 말이 이를 뒷받침 한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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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는 세리장이었고, 세리장은 나이가 보통 40은 넘어야 했다.
세무행정에 종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 정부의 관리였다.
로마 정부가 요구하는 금액 이상을 세금으로 거두어 자기들의 부를 쌓았다.
유대 사회의 세리는 나라를 판 배신자이었고, 죄인이었다.
삭개오를 향한 정죄는 누구의 판단일까?
물론 사람들(무리)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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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는 예수의 말을 듣고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할 처지가 못 된다.
본문의 『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로 보아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그동안 깊은 열망과 기다림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님의 여행을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정치적 행위로 이해했다.
로마 정부의 관리였던 삭개오는 유대인을 해방시킬 왕으로 여겨지는
예수님의 행차를 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로마 정권의 앞잡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 속에 있는 형국이다.
삭개오의 태도가 이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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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을 포함한 로마의 속국들은 헬레니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당시 세상의 조류에 떠밀려가는 흐름에 반하거나 구분되는 운동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쿰란 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에세네파는 쿰란공동체를 이루어
독자적으로 율법을 해석하여 엄격한 계율에 따라 수도생활을 했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기 위해 시작된 집단이었다.
자신들과 같이 살지 않는 자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난한 자들, 병자들, 세리들을 죄인 취급했다.
예수께서는 지나친 율법주의를 경고하셨다.
그 시대는 삭개오를 죄인으로 규정했지만, 사실 그는 『잃어버린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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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겠사오며, 4배를 갚겠나이다』의 미래시제로 표현했지만
원문에는 습관적 현재시제 (would 나 used to +동사원형) 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주어왔으며, 갚아왔나이다』’로 번역해야 옳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으나
어디선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방법대로 살아 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삭개오는 언제, 어디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을까?
본문의 『4배』는 출애굽이나 신명기의 율법이 아니다.
그것은 쿰란 공동체의 에세네파의 가르침이다.
즉 세례요한의 가르침이다.
눅3:8에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왔다.
삭개오는 쿰란 현장에 있었거나, 세례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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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1. 삭개오는 이미 복음을 받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
2.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는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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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9 (목) 오후11:23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