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유를 붓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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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
세례요한은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는 삶을 살았다.
예수님은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정죄한 죄인들과 친구가 되셨다.
이 두 분의 삶의 본질은 같다.
그들은 세상과 종교적 관습을 따르지 않고 하늘나라의 본질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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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공의는 (생명)의 회복이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고
동명이인인 마리아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그 동네에 사는 죄 많은 한 여인이 향유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 여인은 죄 많은 창기였다.
이 여인은 초대되지 않았다.
바리새인 시몬은 이 여인의 방문을 좋게 여기지 아니했다.
‘마음에 이르되’로 보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궁시렁거렸다.
그런데 이 등장인물들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고 이상하다.
이 여인은 원문으로 보면 예수의 발에 숨이 막히도록 키스했다.
예수님에 대한 감사가 넘쳐났던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들 수 있을까?
내게도 예수님을 향한 감동과 감격의 때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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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항상 차별과 편견이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당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도 어떤 유명한 사람의 문하생이 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신 메시지나 말씀의 내용에 놀란 것이 아니고
글(=그라마타<헬> 문자)을 아는데 놀랐다.
이 같은 편견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요한복음 7:16에
‘내 교훈(≠글)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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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19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하셨다.
할례는 모세가 주었는데 사실은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다.
레12:3에 사내아이가 태어날 때 8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할 날과 안식일이 겹쳐지면
할례를 해야 하나, 안식일을 지켜야 하나를 두고 충돌이 생겨나게 된다.
랍비들은 할례는 건강과 생명에 관계되므로 안식일에 할례를 할 수 있다고 규칙을 정했다.
랍비들은 의학적인 이유를 들어 태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두고 그들이 하신 말을 꾸짖으셨다.
요7:24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 하셨다.
하나님의 공의는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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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초대에 응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바리새인 시몬도 한 생명이고,
예수님은 바리새인조차도 편견하지 않고 사랑하셨다.
공의란 재판, 심판해서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공의는 생명 회복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초대했지만 기본적 예의조차 취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구체적 사항을 조목조목 말씀하셨다.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가 많을수록 사랑함이 많다고 하셨다.
여기서 마리아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그 여인은 벌써 죄 사함을 받았지만 여기서 그 말을 하신 것은
죄 사함을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함께 있었던 자들은 죄 사함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이상하게 여기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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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2. 오전 7:15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