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성경의 바른 번역과 바른 이해

성경의 바른 번역과 바른 이해

천국백성 2018. 3. 2. 13:37

 

 

 

 

 

성경의 바른 번역, 바른 이해 필요함

『원래 낙원은 지하의 지옥 옆에 있었다

지금은 3째 하늘에 있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단 한 번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을 가리고 있는 휘장을 뒤로 젖히시고

우리에게 지옥이 어떤 곳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6:22-26에서

예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부자와 구원받은 거지 나사로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고 실화입니다.

사실 구원받은 거지는 큰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지옥은 진짜이며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동시에 지옥은 진짜이며 문자 그대로 고통이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지옥이 실제적이며 문자 그대로 고통받는 장소이므로

그곳은 정말로 어딘가에 위치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지옥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저갱=바닥이 없는 굴: 바닥이 없지만 지옥의 바닥이 지구의 중심근처에 있기에

마그마 근처 이기에 중력으로 인하여 바닥이 없지만 속에 있는 것들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스올’(Sheol)은 영어 성경에서 대개 지옥(Hell)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스올죽은 자들의 거처’(abode of the dead)를 의미하며

구약성경에서 대부분 죽은 자들의 혼이 거하는 곳地獄 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올은 종종무덤’(grave) 죽은 자의 몸이 거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맥에 따라 스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은 다 스올에 갔습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죽어서 스올 혹은 지하 세계(음부)에 갔습니다.

구약시대의 구원받은 사람들 즉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이 땅에 살던 성도들은

신약시대의 성도들과는 달리 죽어서 곧장 셋째 하늘 즉 천국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의 구원받은 성도들은 죽은 뒤 스올즉 지하 세계에서

큰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불꽃이 있는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아브라함의 품이라 불리는 곳에 거하며 거기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천국으로 간 사람은 단지 에녹(5:22-24, 11:5)엘리야(왕하2:9-11) 두 사람뿐 입니다.

물론 성경은 확실하게 에녹이 천국에 갔다고 말하지는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가 있는 곳에 있으려면 그것은 바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그가 천국에 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25:7-8)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열조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사이에 두고 지옥의 불꽃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어서 그곳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곳의 수장(首長)으로 만드셨고

그때부터 그곳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불렀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부자가 거지 나사로가 있는 곳을 보았을 때

그는 아브라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있던 곳은 결코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42절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예수님께서 늘 아버지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천국이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옆에 있던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이 회개하며 예수님께 청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 강도에게

그가 자신과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낙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단 한 번 이곳에서만 낙원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낙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낙원이 땅속에 있었으며

지옥과 맞닿고 있는 큰 구렁텅이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명쾌하게 이것에 대한 답을 줍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4:8-10)

 

우리 주님께서는 죽으신 뒤 곧 바로

천국(셋째 하늘)으로 가지 않고 스올로 갔습니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에서 스올에 해당하는 단어는 하데스(Hades)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스올(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26-27).

 

다윗은 이미 시편 1610절에서

예수님께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스올(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2:29-31)

 

예수님의 몸이 무덤 안에 있었던 사흘 밤과 사흘 낮 동안

우리 주 예수님께서 스올혹은 하데스로 가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하데스)에 가셨다는 사실은 사도신경에서도 증명됩니다.

한글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그런데 영어 사도신경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는

구절 가운데에 지옥에 내려갔다가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 the third day He rose again

 

아마 우리말로 사도신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지옥(하데스)에 가셨다.”

사실을 믿을 수 없었기에 이를 삭제한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셋째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땅의 아래 부분들로 내려가셨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 즉 낙원에 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즐거운 상태로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서 낙원에 사로잡혀 있던 구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사로잡아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바로 그때 다음의 성경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27:51-53)

 

고린도후서를 쓰기 14년 전에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것으로 여겨져 내버려진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자신이 셋째 하늘 곧 낙원에 끌려 올림을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참으로

낙원이 땅의 중심부에서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

 

 

『새 예루살렘의 성벽 기초석에 새겨질 12째 사도는?』

 

새 예루살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누가 그 도시를 만들었을까요?

요한은 말씀합니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21:2)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21:10)

 

새 예루살렘 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직접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그 도시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천국을 별과 별자리 그리고 은하수와 행성들로 장식하신 하나님께서

손수 새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꾸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14:2)

 

그 도시의 성벽에는 열두 기초가 있고

그것들 안에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들이 있더라.

(21)

 

하나님께서는 그 기초 하나 하나에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누가 열두째 사도냐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젊은) 야고보,

시몬 셀롯, 유다(야고보의 형제) 등 이렇게 열한 명의 사도가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비열한 위선자였으며 지옥으로 갔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의 기초들에 그 이름이 새겨질 열두째 사도는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맛디아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열한 명의 사도들이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그를 뽑았기 때문입니다.(1:23-26).

맛디아는 사도행전 1장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열두째 사도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그 성벽의 기초들에서 보게 될 열두째 사도의 이름은 바울일 것입니다.

 

 

 

-----------------------------------------------------------------------------

 

 

『새 예루살렘은 피라밋 모양이다』

 

요한이 천사를 따라서 새 예루살렘 도시를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

천사는 금으로 만든 막대기 즉 측량할 수 있는 막대기를 만들어 주었고

계속해서 그 도시의 문과 성벽과 도시 자체의 크기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문의 치수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성벽과 도시의 크기는 기록했습니다.

 

나와 이야기하던 자가 그 도시와 그 도시의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21:15-16)

 

우리는 이미 그 도시의 성벽의 높이가 144큐빗 66m 정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도시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는 모두 12,000스타디온 입니다.

1 스타디온은 200m가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도시는 길이가 2,400km, 너비가 2,400km 그리고 높이가 2,400km정도 됩니다.

 

그 도시의 기초는 정사각형입니다.

그 도시에는 단지 네 개의 직각이 있으며 그 기초는 그 네 개의 직각 모서리를 받치고 있습니다.

그 도시의 구조로 볼 때 이런 정사각형은 없습니다.

 

그 도시는 길이가 너비만큼 길더라(21:16).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단 한 가지 기하학적 도형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라미드입니다.

피라미드의 높이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기초의 어떤 변과도 길이가 정확히 같습니다.

피라미드에 있는 유일한 직각은 그 기초에 있는 네 개뿐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피라미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좌와 어린양의 왕좌는 분명히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강은 그 왕좌로부터(22:1) 네 개의 벽면으로 아래로 흘러내릴 것입니다.

 

 

 

-----------------------------------------------------------------------------

 

 

『성경의 바른 번역과 바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왕국(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3-14)

 

위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일반 교회에서 가르치듯이

목숨을 내걸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고, 세상의 끝까지 견디는 자를 말합니다.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으로 7년 환난기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런 사람은 로마서 1126절 말씀 즉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른 뒤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에 구원받는 자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이스라엘)

(11:25-26)

 

그래서 7년 환난기에는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왕국의 복음이

144,000명의 유대인 선교사들(7:4-8)에 의해 전 세계에 퍼지고

그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서 강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십니다.

따라서 선교단체나 교회 등이 문맥에 상관없이 마태복음 24장을 취해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못 합니다.

    이것은 후천년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며 성경은 결코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왕국의 도래가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예수님께 가장 먼저 왕국의 회복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6)

 

 

성경이 바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늘의 왕국의 설립과

특히 천년왕국의 도래 등에 대해 바르게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가요?

 

학자들로부터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어려서부터 잘못 번역된 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말씀을 공부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달해 주시고자 하는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처럼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대부분의 구절을 영적으로, 비유로해석하게 됩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 특히 구약성경을 - 읽으면서

그 내용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내인 이스라엘을 직접 다루시는 역사적 사실로 대하지 않고

 모두 나하고 상관이 있는 영적 QT 재료로만 사용하기에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심오한 관이 형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예로 에스겔서 3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골짜기에서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을 보여 주시고

이들에게 대언하게 하시고 결국 이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371-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여기까지만 읽고 영적으로 이것을 내게 적용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이것은 성경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에 대한 해석을 내려 주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

(37:11-13).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뼈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며

40장부터 나오는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1차적으로 이방인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유대인들의 부활과 상관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이해한 뒤에 영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1차적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 모두 나에게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많은 크리스천들이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잘못을 범하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을 모두 자기에게로 취하고 있습니다.

또 그러다 보니 왕국, 주의 날,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7년 환난기 등을

모두 교회에게 적용하고 영적 해석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 역사인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을 통해 역사하셨는데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

(3:1-2)

 

또한 사탄을 멸하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게 될 메시아

역시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속박아래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하셨지만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40년간 광야 생활이 지속되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 즉 가나안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을 져버리고 반역의 길을 걸었습니다.

 

400여 년간의 재판관(사사)들의 통치 시절이 끝날 무렵에

그들은 하나님을 매우 실망하게 하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 대신 육신의 왕을 달라는 요구를 사무엘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한 채 왕정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의 율법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이 땅에서 거의 사라지게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에 율법 책이 다시 발견되어

그 책을 읽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관행들은 유지되었고

명절들 및 헌물 드리는 것 등에 대한 예식들은 행해졌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졌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11-15)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와 같은 경고의 말씀을 주시며

그들에게 메시아를 주실 것을 예언해 주셨지만

지도층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지 않고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마귀의 세력을 대표하는 바빌론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들을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되돌려 보내셨고

그들은 본토에서 처음에는 학개나 스가랴 같은 예언자들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으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반역의 길을 갔습니다.

 

그 결과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였던 말라기로부터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온갖 악행을 행하도록 약 400년 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셨고

마치 그들의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400년간 신음했듯이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아래 신음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를 진정으로 사모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각종 종교 분파를 만들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들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시대에 생겨난 것들이

바로 신약성경을 열면 갑자기 등장하게 되는 종교 및 정치지도자들

바리새인, 사두개인, 열심당원, 엣세네파 등의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영적 고통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파되도록 그리스어를 완성하셔서

그 당시 세계의 공통어가 되도록 하셨고

로마 제국을 통해서는 도로가 확장되고 곳곳에 교통시설이 들어서도록 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인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기원전 6년경에

자신의 독생자를 구약의 예언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국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그가 누구신지 바로 알지 못하고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써 붙인 명패도 유대인의 왕 예수이었습니다.

결국 왕국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으로 왕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천년왕국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의 거처인 하늘, , 예루살렘은

에덴의 완전하고 영원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2018.3.2. 오후2:36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