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맏아들로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바치면 되는데
그 사실을 모르면 모두 죽게 된다. 사막의 나무처럼 모두 죽게 된다 」
어느 날 새벽에 깨달은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태를 처음 열고 나온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나귀의 맏배는 어린 양을 대신 바쳐서 대속해야 한다.
그렇게 대속하지 않으려면 그 목을 부러뜨려야 한다.
너희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내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 출34:19-20
이것이 무슨 말인지 그 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 나귀 즉 당나귀는 양(羊)보다 쓰임새가 좋았습니다.
그 당시에 나귀는 교통과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자가용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도 당나귀의 맏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바치기가 아까우면 흔한 양의 새끼로라도 대신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싫으면 귀한 나귀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니 나귀를 살리기 위해 양의 새끼를 희생시켜야 했습니다.
이삭의 맏아들 <에서>와 차남 <야곱> 중에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이 여겼습니다.
그들은 쌍둥이기 때문에 장남 차남은 몇 분 사이에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장남, 즉 첫아들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이것을 <에서>는 간과했던 것입니다.
<에서>의 아버지 이삭은 장자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장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동생이 가로챘습니다. 실지로는 가로챈 것이 아니라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는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동생 <야곱>을 더 사랑했는데 이것도 성경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당시에 짐승과 사람의 맏배를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상하게 징벌의 신으로만 속단할 것이 아니라
짐승과 사람의 맏배는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로 찾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맏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 한 것도
하나님께서 귀한 자식을 주셔놓고 뺏는, 즉 병 주고 약 주는 하나님으로 속단하지 말고
원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도로 찾으시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바쳐야 할 이삭 대신에 대속물(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양)을 준비(여호와 이레)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맏아들로서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 율법 속에 나타나셔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인간으로 오셨기에 예외없이 하나님께 바쳐야만 했던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대속물을 바친 것이 아니라, 몸소 자기 자신이 대속물이 되셔서 바쳐진 것입니다.
예수님 살아 생전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그것에 대한 대화를 하신 것이 아닐까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모든 인간, 즉 맏아들이든지, 차남이든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넓은 의미로 볼 때,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귀한 맏아들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이면 대속물로 짐승이면 되는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 인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대속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오신 예수님을 보았던 사람들,
다시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영원히 그와 함께 살게 될 천국백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면 인간 모두가 구원받기 때문에 틀린 말입니다.
2017.4.16. 새벽 4시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