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5대 사건
<1.십자가와 부활>
신약의 사건들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사랑의 극치인 십자가 사건과
그로 인해 이 땅에 세워진 몸 된 교회에 관한 사건들의 기록입니다.
이것은 지난 2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며
아름다운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본 요체가 되는 일이 신약성경 속 사건들로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살아 역사하는 능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여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을 꼽아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만큼 크고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성경 전체에서도 십자가 사건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사건입니다.
십자가 안에는 처벌과 심판, 용서와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죄를 위해서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처벌하심으로써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용서를 위한 사건이었고,
그 모든 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이 심오한 이야기가 성경의 핵심입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처벌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에 합당한 처벌받는 것을 싫어하며,
누군가를 대신해 처벌받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 하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은 죄로 가득한 우리를 대신해서 처벌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는 처벌과 용서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예수님께 지우시고 처벌함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 처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처벌받으신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형은 처벌 중에서도 가장 혹독하고 잔인하며,
극심한 고통 중에 죽게 하는 사형 형벌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고,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처벌을 위한 방식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 이 십자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생을 처벌하시고,
또한 그 인생들을 위해 그토록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 십자가 사건은,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하나님의 마음,
죄의 값에 따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악 된 예루살렘을 바벨론으로 치시면서도 아파하시는
그 마음이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 사건입니다.
계약으로만 보면 십자가는 처벌이며 인류 심판의 장소로,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계약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심판대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 너머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어 놓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들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의 형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가 흘러넘치는 사랑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관계와 계약의 신비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완성된 곳이자
처벌과 용서,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게 통으로 어우러지는 장소인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위해 형벌과 처벌의 장소인 십자가에 오르셔서 처벌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인생들을 위해서 그 희생의 대가를 치르셨기에,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만 이 은혜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 사건을 행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는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대가를 지불하시고 모든 인생들의 죄에 대한 처벌을 끝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실를 깨달은 사도 요한은 결국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정성껏 장사 치러 무덤 속에 안치했던 예수님의 몸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공의의 십자가에 세우신 하나님,
그 뜻에 순종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지만,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 그분은 마침내 승리하셨고,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은 새로운 능력 안에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넓힐 수 있고, 영생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부활 능력을 통해, 우리도 사망을 이길 힘, 부활의 능력과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모든 열심, 모든 헌신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당히 부활하셨고, 그 사건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주님을 따랐던 모든 이들,
바로 지금 주님을 따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사건은 성경에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됩니다.
<2.성령 강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얼마 후
찾아온 오순절 날 모여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증거하신 놀라운 하늘의 복음을 깨닫게 된 그들이 꿈을 가지고 기도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그 모습을 보며 놀라운 확신을 가지긴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제사장들과 서기관 세력들,
그들의 위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모여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모인 120여 명의 제자들은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열흘이 지났습니다.
놀랍게도 오순절 날 주의 성령이 그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후로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제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모든 성인 유대인 남자들은 1년에 3번 예루살렘 성전에 오도록 되어 있는데
이때가 마침 여러 나라로부터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오순절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들의 언어로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큰일’을 듣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오순절 사건은 사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열방을 향한 선교의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메시지를 듣고 3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새롭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모든 인간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평생 몇 번 놀라는 일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방인인 고넬료가 성령을 받은 장면을 목격한 일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성령을 받은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벽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어느 날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초청하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봅니다.
평소에 부정하게 여기던 것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에, 베드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세 차례, 그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하인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에 심부름을 왔던 종들이 자신들의 주인에 대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며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한다”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의 선행과 신앙을 칭찬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자만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갈급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 했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베드로가 집에 당도하자 그 앞에 엎드립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속됨과 깨끗함을 구별하며,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성령을 내려 주심으로써 베드로의 이 좁은 생각을 고쳐 주십니다.
사람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는 사실,
그 사람이 유대인인지, 이방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받아주신다는 진리를 베드로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편견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만민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를 수 있게 되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3.전도>
유대교의 특징은 전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특별한 선민이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하나님을 남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 끝까지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부활 사건을 알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모든 민족에게 알리는 일이 바로 ‘전도’를 통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전도가 시작됐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도, 그리고 70명의 제자들도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또한 전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 부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크신 일을 전하는
이 전도의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베드로를 비롯한 12 사도들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후 복음이 사마리아로 전파되는 중심에는 7명의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땅끝까지 ,즉 이방인에게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기교회 박해의 최전선에 있던 바울이 복음의 전도자로 급변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특별히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바울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데,
그 말씀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많은 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단연코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부름 받은 이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헌신하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동반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편안하고 쉬운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길은 가시밭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복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 부르신 사람들,
곧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나 초기교회가 세운 7명의 일꾼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삶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살아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일을 피하지 않았던 그들의 전도를 향한 노력으로
복음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전도로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4.교회의 시작>
다윗이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셨고,
이후 솔로몬이 그 법궤를 모시기 위한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바로 그 예루살렘 성전이 다윗 이후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천 년 동안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고 승천하신 이후 세워진 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초기교회는 큰 조직도 재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초기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며 나눠쓰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아 내어놓았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교회공동체에 내어놓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초기 교회공동체는 이렇게 하나하나 기틀을 다져갔습니다.
‘교회’가 튼튼히 세워진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고, 또 교회였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곳인 교회는 성령님과 함께 예수님을 머리로 해서 만들어 집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있는 곳이고, 찬양, 기도, 말씀, 나눔, 교제, 등이 있는 곳입니다.
비록 이 교회공동체는 그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제자들은 그 고난을 기뻐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핍박은 가중되어 사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만
이 또한 예수님을 향한 사도들의 헌신과 충성을 꺽지 못했습니다.
또한 성령의 힘으로 날마다 지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기에
이 위대한 조직, 교회는 2천 년을 이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최초의 초기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차츰 교회로서의 진정한 정체성,
즉 ‘열방을 향한 교회’로 서게 됩니다.
진정한 사명과 복을 위하여 교회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을 통해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는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복음은 생명이 있기에 가만히 정지해 있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안디옥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합니다.
이때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을 합류하게 함으로,
안디옥 교회를 거점으로 한,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서로 도우며 함께 든든히 세워졌고,
그 두 교회에 이어,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 고린도 교회,
로마 교회, 골로새 교회, 에베소 교회 등 수많은 교회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거기엔 이미 전도가 있고, 십자가의 부활의 사건이 선포되고 있으며,
또 교회가 있는 곳엔 순교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지역이 살아납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서 생명이 퍼져갑니다.
<5.순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목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바로 그 목숨,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너무나 귀한 인생을 살았으며,
결국 순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위해 순교 했습니다.
그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 년간 이어졌던 침묵을 깨고 등장한 사람입니다.
즉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복중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짧은 기간 동안 온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데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기 전, 6개월이 전부였습니다.
우선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단시간에 끌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개성 넘치는 광야 패션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입지 않은 약대 털옷을 입고 다녔으며 얼마나 눈에 잘 띄었을까요?
또한 그의 주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고, 잠도 거친 광야에서 잤습니다.
게다가 그의 설교와 그가 베푸는 세례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도끼로 나무를 내리찍는 것처럼 거침없고 예리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동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살았는지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에는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사회의 유력자들인 세리들에게는 “정한 만큼의 세금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 내지 말라”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며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라고 촉구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세리와 군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또 그들에게 억눌려 살던 민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겠다고 하면,
흐르는 강물 속에 몸을 담그게 하니, 그러한 경험 또한 놀라웠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도발적인 요인들로 인해
그는 온 이스라엘 민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세례요한의 모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사역은 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때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지금까지 그 인기와 명성을 이루어놓은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미치신 후,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 촉구를 골자로 하는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갑니다.
이를 지켜본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갑니다.”라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침착하게 자기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 줍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자기는 그리스도가 이님은 물론이요, ‘보냄을 받은 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앞뒤 사방팔방이 트인 들녘에서,
외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광야의 소리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스스로를 이렇게 금방 사라져버릴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은 신랑이 아니고 참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들러리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신랑의 결혼을 옆에서 함께 기뻐하는 친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들러리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고,
자신은 이 ‘들러리의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사명을 더 완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흥해야 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이었고,
때가 되었을 때 그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를 자기의 것인 양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당연히 주목받아야 할 분이 예수님 한 분이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세례요한은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정면으로 지적함으로써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자로서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례요한에게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이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는 놀라운 평가를 내려 주십니다.
이렇게 세례요한이 순교한 후, 7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 순교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가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순교하였고,
예수님이 택한 그릇 바울도 순교했습니다.
이들이 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생명을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친 순교 사건
또한 신약성경의 위대한 사건입니다.
2017.2.12 10:27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