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읽어야 할 2권의 책

읽어야 할 2권의 책

천국백성 2017. 2. 5. 12:01

 

읽어야 할 2권의 책

 

성경과 고대전쟁

(Bible with the Ancient Wars)

\ 13,000원

 

 

 

창세기 14장의 전쟁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세상 어느 누가, 어느 책이 감히 태초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태초부터 세상 끝 날까지가 기록된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책은 창세기 14장에 이르면서 어느새 벌써 전쟁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창세기 14장은 당시에로 시작합니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창14:10)

 

당시는 바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많은 재산으로 인해

한곳에 살지 못하고 각자 살고 싶은 곳을 정해 삶의 장소가 나뉜 바로 그 당시를 말합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그 당시를 앗수르가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때 라고 말합니다.

롯이 선택한 땅인 소돔은 부유한 곳이었고,

젊은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에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요단 지역은 소돔을 포함해 5개의 도시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5개 도시국가의 왕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벨라 곧 소알 왕입니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의 도시국가가 침략해 요단 지역의 왕들에게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12년간 조공을 바치던 요단 지역 도시국가 왕들이

13년째에 앗수르의 도시국가들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배신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자 앗수르 도시의 군대가 시리아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와중에

요단 지역 도시국가들이 사는 곳까지 공격해와 구덩이가 많은 곳

싯딤 골짜기, 즉 염해에 진을 치고 소돔인들과의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 지형과 지물을 아주 잘 활용했습니다.

때문에 요단 지역들은 앗수르 도시국가 왕들의 전술에 말려들어

많은 군인들이 역청 구덩이에 빠지고 나머지는 산으로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 도시국가 4명의 왕들요단 지역 쪽의 5명의 왕들

많은 군사를 이끌고 참여한 대규모 전쟁에서 앗수르 도시국가 쪽이 승리했고,

요단 지역 쪽은 재물과 양식을 빼앗기고, 많은 주민까지 노예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브라함이 평소 훈련시켰던 사병 318명을 이끌고 단까지 추격합니다.

어두운 밤에 적들이 무기를 챙길 틈도 주지 않고 기습공격으로 그들을 전멸시키고,

더 진격하여 다메섹 호바까지 추격해

빼앗겼던 모든 것과 조카 롯을 구해왔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매우 부드러운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야습까지도 가능하도록 종들을 훈련시킬 만큼

군사실력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했습니다.

 

또한 그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일컫는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칩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로 십일조(Tithe)를 드린 이야기입니다.

 

소돔 왕은 아브라함이 되찾아 온 모든 것을

아브라함이 차지하도록 허락했으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조카 롯을 구하는 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첫 전쟁 : 아말렉 전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리고 이 말씀은 이집트로 내려간 지 430년 만에

히브리 민족으로 결국 성취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70여 명이 이집트에 왔을 때 요셉의 가족들이라 불렀는데

430년 만에 숫자가 불어나자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마침내 히브리 민족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 430년 만에 나온 히브리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가지기 위해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 광야에서 첫 번째 전쟁을 경험합니다.

히브리 민족이군대를 조직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말렉의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족속입니다.

 

아말렉이 와서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겁니다.

물론 이후 수많은 전쟁을 하게 되지만, 이 처음 전쟁은 히브리 민족에게 쉽지 않은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얼마 후에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후미를 친 것입니다.

아말렉은 고볼리티스페트라에 거주하면서

고대 근동에서 호전적인 민족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은 10가지 재앙으로 이집트를 초토화시키고,

홍해를 건널 때는 이집트의 군대를 모두 수장시켜 가며,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이 장차 힘 있는 큰 민족으로 성장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힘이 약할 때 사막 한가운데서 그들을 처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말렉이 싸움을 걸어오자,

모세는 여호수아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군인들을 선별하게 하고 전쟁에 내보냈습니다.

전쟁에 내보내는 모세나, 노예 경험이 전부이지만, 순종하고 전쟁에 나가는 여호수아 모두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상한 전쟁을 만들어 갑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최초 전쟁의 전략이고 전술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형 아론과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남편인 훌이 모세의 양팔을 잡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계속 손을 들고 기도하자 전쟁은 마침내 이스라엘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칼로 싸운 여호수아, 팔을 잡아주며 협력한 아론과 훌, 그리고 배후에서 기도로 밀어 준 모세의 승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오늘의 승리를 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여호수아에게는 '내가 아말렉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서

 아무도 아말렉을 기억도 못하게 하겠다'고 한 나의 결심을 일러주어라”(출17:14 새번역)

 

이 승리 후 모세가 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 이는 하나님께서 싸우셨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가장 인간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 후에 매우 특별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아말렉과 대대로 싸울 것이다

이 말씀을 근거로 이후 사울 왕이 아말렉과 싸우게 됩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합니다.

"...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이후 사울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전리품 처리 과정에서 사울 왕은 사무엘의 요구대로 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는 등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길갈에서 포로가 된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죽이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 페르시아 시대 에스더서에서

 아말렉의 후손 아각 사람 하만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고 하는 데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여리고 성 공성전 : Most Amazing War

전쟁사에서 가장 어려운 전쟁은 뭐니 뭐니해도 공성전(攻城戰), 즉 남이 살고 있는 성을 빼앗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말 놀라운 공성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여리고 성 공성전입니다.

 

공성전은 주로 사다리를 동원한다든지,

투석기를 가지고 성안으로 무엇인가를 날려 보낸다든지,

아니면 성안의 내부 사람을 회유해서 성안에서 성문을 열게 한다든지,

혹은 첩자를 거짓 투항시켜 성안으로 들여보내게 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공성전에서는 선발대가 거의 죽음을 각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 위에서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아래로 붓거나,

화살을 비 오듯 쏘거나,

최소한 돌멩이라도 던지기 때문에

성 바깥의 주변은 매우 위험한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전체가 선발대가 되어 성 주변을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도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성을 도는 것은 이스라엘 쪽인데, 정말 돌아버리는 쪽은 여리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7일 째는 그동안의 6일과는 달리 성을 7바퀴 도니 성안의 사람들은 패닉(panic:공황)상태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니 성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소리도 굉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 공성전은 어느 전쟁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술은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전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술은 사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실행하기 곤란한 전술입니다.

전쟁터에서 공격하려는 성 주변의 성 밖은 가장 위험한 곳이기에 그곳을 돈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가장 도발적인 전술입니다.

 

    

     계속 가필될 것임

 

 

성경 통독(通讀)과 神學

 

(BibleTongdok with Tong Theology)

 

\ 15,000원

 

 

 

 

 

이 책을 읽다가 3번 울었습니다.

 

슬퍼서도 아니고, 아파서도 아니고, 분해서도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이 감동되어서 입니다.

 

 

구약의 3대 사건

1.출애굽 사건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만 찾아보라면

첫째는 출애굽 사건이고,

두 번 째는 왕정수립 사건

세 번 째는 출페르사 사건입니다.

 

출애굽을 말하려면 입애굽과 출애굽의 과정, 배경과 경로를 이야기해야 하고,

왕정수립을 말하려면 왕정수립의 배경과 수립과정, 왕정통치와 왕조를 이야기해야 하고,

출페르사를 말하려면 입바벨론과 포로기, 출페르사의 배경과 사건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출애굽이 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인지 근거를 들어봅시다.

일단 출애굽 사건은 성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6권의 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특히 율법서에서도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을 스스로 굉장히 높게 평가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소개하실 때 사용할 수 있는 수식어는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땅을 창조하고 너희에게 생명을 준 네 하나님

전지전능하며 무소불위(無所不爲 = 못 하는 일이 없음) 네 하나님

'우주만물을 경영하시고 인간의 모든 행사를 주관하시는 네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사건이 그만큼 의미가 있고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면

반복적으로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 시대에 야곱의 가족들은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왔고,

그들은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심히 강성해져서 민족 규모로 창성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애굽에서 풍년과 흉년이 올 것임을 예견하고

14년의 국가 비상사태를 치리하던 총리 요셉 모르는 왕조가 탄생하게 되었고,

요셉의 가문, 다시 말해 야곱의 후손들은 점차 천대받아 급기야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러한 앞뒤 맥락이 창세기와 출애굽기 초반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은

애굽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소망은 있을지언정,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나 가능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사건이라는 그 큰 사건이 시작으로부터 결행까지 불과 6개월 만에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고,

바로와의 10차례의 협상을 통해 결론을 맺은 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까지 걸린 기간이 6개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었던 출애굽 사건이

구약 1,600년의 사건 가운데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

그리고 그 통로로 쓰임 받았던 모세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6개월이었으니 다행이지, 더 길었으면 결국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9차 협상까지 결렬되었을 때, 바로는 모세에게 다시 나타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왜 모세여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만나셔서 그를 출애굽 사역의 동역자로 부르시며 설득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모세를 설득하셔서 바로 앞에 가게 하셨을까요?

히브리인들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출애굽시키기 위해서는 바로와의 협상이 꼭 필요한데,

그때 바로가 어떤 히브리인을 협상테이블에 받아줄 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민주 시대의 대통령도 아무나 만나주지 않을 텐데 하물며 왕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전직 왕자 출신이었습니다.

전직 왕자 출신인 모세 정도 되니까 바로가 협상 테이블에 올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따져보면

실로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놀라게 되고,

그 사건들이 긴장감 넘치는 현장들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바로와 모세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에도 그리던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민족 단위가 노에 생활로부터 해방되는,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그 누구의 힘이나 지혜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으로 진행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홍해에 이르게 될 즈음에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겨 있던 애굽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 옵니다.

반쯤은 그들의 장자의 죽음에 대한 분풀이이기도 했을 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히브리 노동력을 그냥 보내준다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할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시내 광야에 도착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살던 땅에서 나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광야 길을 걷는 상황이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노예라는 신분,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되는 노동이 힘들기는 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생활을 하면서 그나마 한 가지 만족스러운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풍요로운 먹을거리였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무엇이 그립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을가요?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떠 올리며

모세를 향해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노동이 힘들고 교육을 못 받은 게 서럽기는 해도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일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후에 만나를 보고 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불평하는 맥락도

애굽에서 누리던 최소한의 먹을거리의 풍요에 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준비해 들고 나온 먹을 것이 떨어져가자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리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불평하자, 그 불평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갑자기 만나를 만들어서 내리신 것일까요?

이 질문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놀랍게도 만나는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시내 산에서

그들을 1년 정도 머물게 하실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고 법궤를 만드는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시내 산에서 머문 1년의 기간 중에서

금송아지 우상 사건만 소모적인 시간이었고,

나머지 시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적으로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기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 산에서 머무는 기간을

최소 1년 이상으로 계획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 !, 즉 사막에서 머무는 1년 동안

그들이 어떤 농산물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모래바람밖에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먹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최소한 1년 정도는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시겠다는 계획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이후 실제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이나 만나를 먹게 되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을 마친 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입애굽을 주장한 불순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양식으로 만나를 준비하셨고,

 그 이후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실하게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 받지도 못하고

훈련의 시간이 부족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양식뿐 아니라

마실 물을 인하여도 불평을 쏟아 놓았습니다.

광야에 도착했으니, 물 부족 현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을 놓고 불만을 쏟아 냅니다.

그 불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위에서 물을 내십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내 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 계명과 법도와 율례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 계명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만한 안목은

오로지 모세 한 사람만이 제대로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과 법도와 율례의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건축할 수 있는 식양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러한 식양에 따라, 백성들이 자원하여 내어 놓은 예물로

성막을 건축하는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의 말씀이 출애굽기에 일부, 또한 레위기 전체, 민수기 일부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말씀을 받고,

주신 식양대로 성막을 건축한 이스라엘 배성들은 가나안으로 진군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과 보살핌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출애굽이 가능했고

출애굽 생활이 가능했던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계속 신뢰하고 가나안으로 진군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을 보낼 것을 청했고,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을 들은 후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한 그들을 향해 믿음의 훈련 기간으로 40년 광야 생활을 명하십니다.

그 광야 생활의 이야기들이 민수기에 실려 있습니다.

 

광야에서 훈련받으며 말씀으로 교육받은 결과,

출애굽세대의 자녀세대인 만나세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졌던 만나를 먹으며 자란 만나세대가 믿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가 남긴 역사 특강과도 같은 설교가 바로 신명기입니다.

그 만나세대들이 출애굽의 목적지였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

믿음과 전쟁을 통해 그들의 주거지를 확보하는 기록이 여호수아에 실려 있습니다.

 

2.왕정수립 사건

제사장과 사사들이 중심이 되어 다스리던 이스라엘에 큰 변화를 가져 온 사건이 바로 왕정수립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왕정수립을 원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왕정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

젖을 떼자마자 부모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기 시작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제사장 엘리를 통해 교육을 받았으며,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반면교사(反面敎師

( =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이 도리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로 삼아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무엘은 점점 자랄수록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온 이스라엘이 알게 되었습니다.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죽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게 되자,

준비된 지도자 사무엘은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지속적으로 시대부흥운동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일이 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자 전국을 순화하며 직접 말씀을 선포하고,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을 제하게 하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백성들을 가르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사무엘이 늙어 지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새 시대를 열었던 민족의 지도자 사무엘의 아들들이 버지의 모습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이득을 따라 뇌물을 받고,

뇌물을 바친 사람에게 이롭게 판결을 내리는 등의 죄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이후의 나라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대안을 생각해 내는데,

그것은 다른 열방의 나라들처럼 이스라엘도 왕의 제도를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선조들이 노예생활을 했던 애굽도 그렇고, 가나안 족속들도 그렇고,

대부분의 이웃 나라가 왕정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중심이 되는 왕정제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국가경영이 이루어지는 제사장제도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가장 좋은 제도입니다.

 

왕정제도는 이전의 제사장제도와 비교해서 보아야 정확한 실체가 보입니다.

제사장제도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제도이나,

왕정제도왕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사회적 약자 배려가 우선이지만,

왕의 통치는 왕권이 중심이 되고, 강자 중심의 명령 체계가 우선이 됩니다.

제사장제도어우러지는 공동체로 유지된다면,

왕정제도계급 체제로 유지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제도를 유지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백성들의 이러한 요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들의 결정에 실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로 하여금 왕정제도가 결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게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열거하며 설명한 왕정의 실체백성들이 왕의 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 설명을 했으면 알아들을 만도 한데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보다 왕의 종으로서의 삶인 왕정을 허락해 달라고 더욱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시고, 어쩔 수 없이 들어주셨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옳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져주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왕정이 수립됨으로써 초대 왕이 탄생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왕으로 세움 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외모가 준수했던 사울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효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암나귀가 집을 나가자 아버지를 위해 그 암나귀를 찾으려고

나이 40세에 3일 동안 여러 지방을 돌아 다녔고,

결국 암나귀를 찾지 못하자 자기를 걱정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사무엘을 접견하러 갈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빈손으로 갈 수 없다는 마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사무엘이 그가 왕이 될 것이라 했을 때,

그는 자신이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집안의 출신이라고 말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사무엘로부터 자신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것이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서도,

국가의 일을 함부로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초대 왕으로 등극한 후 권력에 취해 하나님의 명을 여러 차례 불순종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사울 대신 왕이 될 재목으로 다윗을 주목하셨습니다.

다윗은 많은 훈련을 거친 끝에 왕위에 추대되는데, 그는 왕권을 가졌던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모습을 닮지 못하고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예루살렘에 이방 신전을 만들며 사치한 생활을 일삼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정을 허락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왕조는 남북으로 나뉘게 되고,

이후 북왕국은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까지 200여 년,

남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까지 350여 년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200여 년과 350여 년의 세월 동안 수십 명의 왕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들의 이름과 행적이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왕들이 활동할 때에 선지자들 역시 함께 활동했는데,

그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활동 내용이 각 선지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정수립 사건 역시 출애굽 사건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많은 부분의 기록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사와 제사장이 중심이 되었던 사사 시대와 함께 보아야 하기에 사사기,

 또한 그 수립 과정과 초대 왕 등극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 사무엘서,

이후 이어지는 남북 왕조와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열왕기서와 역대서,

 각각의 왕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이 기록한 선지서들 등이

 왕정통치 사건을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출페르시아 사건

유대인들이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페르시아에서 나와 귀환한 사건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그 후 150여 년 후에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나라를 잃게 되어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게 되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페르시아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우선 페르시아 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꼽으라면,

다니엘, 학개, 스가랴, 에스라, 에스더, 느혜미아, 말라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와 관련된 인물들과 성경의 부분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애굽이 있으면 입애굽이 있어야 함과 같이,

출페르시아를 알기 위해서는 입페르시아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바벨론 제국에 이어 등장한 제국이므로,

70년 전에 유대인들은 사실 입페르시아가 아니라

입바벨론을 한 사람들입니다.

입바벨론 이야기는 창세기의 입애굽 이야기보다 훨씬 더 격동의 세월,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입바벨론 이야기에서는 예레미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레미아애가라는 슬픈 노래를 포함해서 그 긴 예레미야서의 내용들은

모두 입바벨론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입바벨론 시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는 B.C605년에 1차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애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셉과

입바벨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다니엘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들의 직업이 총리, 즉 행정가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은 예루살렘에서 살 때 보다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을 제공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겉모양은 유대인이지만 속은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느부갓네살 왕의 계획이 이 모든 혜택을 제공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여기서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때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고, 신앙적 선택을 합니다.

타협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레위기에 나온 율법에 따라 자기가 먹는 음식을 바꾸고 절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유대인들도 바벨론에서 훌륭하게 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적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세워간 다니엘 같은 이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B.C. 598년경에 2차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먼 이국 땅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회를 틈 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포로민들에게

 하나님의 훈련 기간인 70년을 선포하고,

짧지 않은 세월이니만큼 바벨론 땅에서 서둘러 정착할 것을 설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끌려와 있던 포로민들이 에스겔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을 보내셔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의 설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땅에서

삶의 터전을 점차로 확보해나가고 절망에 빠져 있는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빠른 정착과 성공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포로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소망의 씨앗으로서 믿음으로 연단됩니다.

 

예레미야부터 다니엘과 에스겔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흘린 눈물과 땀의 나날들이 모여 70년의 세월이 흐르고,

제국의 주인은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넘어 갑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로 잡아 온 사람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며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허락합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1차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2차로 에스라, 3차로 느헤미야 같은 인물들이 출페르시아를 이끌었습니다.

 

가장 먼저 1차로 페르시아를 나와서 본국 이스라엘로 귀환한 사람들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에 따라 제단에 드리는 제사들과 종교적 절기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이른 지 22월에 본격적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백성들은 일단 자기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16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데,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십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메시지는 간명합니다.

비록 성전 건축의 일이 난관에 부딪쳤지만 다시 힘을 내어 성전 건축의 사명을 완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두 선지자를 통해 책망도 하시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도 주십니다.

이에 그간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이 재개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한편 페르시아에서는 유대 민족이 큰 민족적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최고 관리인 하만이라는 자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유대인 모르드개에게 화가 나서,

유대인들을 진멸하라는 조서를 공포하도록 궤계를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은 왕후인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극복되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전역에서 높임을 받게 됩니다.

예루살렘 본토에서 성전 건축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 때,

페르시아에서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펼치신 최고의 드라마 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이 사건은 에스더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더 사건은 1차 귀환과 2차 귀환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이 사건 후에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2차 귀환이 진행됩니다.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은 성전 재건 이후 새롭게 세워지기 시작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한 생활을 확립하는 데에 큰 계기가 됩니다.

이어서 3차 귀환은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아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집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이 여전히 훼파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 가운데 금식기도한 후에

고통당하는 동족을 위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로 결심하고 작업에 착수하여,

흔들림 없이 최종 목표를 실현해 나갔습니다.

그런 그의 3차 귀환과 성벽 재건의 이야기는 느헤미아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2017.2.5 주일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