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왕조
사울, 다윗, 솔로몬 시대까지는 통일왕국시대이었습니다.
이제는 분열왕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고,
역대기서는 남유다만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북왕국 19명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의 악한 길을 따라가고 맙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러 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여러 왕조가 세워집니다.
특히 오므리 왕조에서는 오므리의 아들인 아합 왕이 유명한데,
그는 왕비 이세벨과 함께,
북이스라엘 전체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의 나라로 만드는 죄악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사역했습니다.
이후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예후 왕조에서는 여로보암 2세 때 나라가 매우 강성했는데,
이 때 아모스, 호세아, 요나와 같은 선지자들이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북이스라엘은
결국 B.C.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왕조 200년
북이스라엘은 국가 전체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과는 도무지 동떨어져 있던 시대였습니다.
‘멀어져가는 사명’을 생각하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살려 봅시다.
* 남유다 200년의 특징은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로 지그재그를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 북이스라엘 200년은 4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로보암의 길로 200년을 직진했습니다.
들째, 여로보함에서 시작해 호세아로 끝났고, 중간에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가 있었습니다.
셋째, 오므리 왕조 때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예후 왕조 때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가 다윗의 길로 유턴을 시도했습니다.
넷째, 결국 주전 8세기 앗수르가 등장해서 사마리아를 사마리아인(혼혈족)으로 만들었습니다.

분열 양상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아버지의 신앙과 정치의 폐단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정국을 분열로 몰아갑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시고, 북이스라엘을 여로보암에게 맡겨야겠다는 계획을 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나누셨지만,
신앙적 중심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두 국가가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성인 남자들도 일 년에 세 번씩은 예루살렘이 있는 남유다로 내려오라고 명하십니다.
정치적으로는 나라가 나눠져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동일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길 vs. 여로보암의 길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일 년에 세 차례씩 남쪽 예루살렘으로 성인 남자들을 보내면,
사람들의 마음이 남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절기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 날짜도 바꿔버립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두 가지로 평가하십니다.
바로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임 이후 세워지는 19명의 왕들 모두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우상을 섬기는 안타까운 역사가 이어집니다.
오므리 왕조와 엘리야의 사역
북왕국에는 계속해서 쿠데타가 이어집니다.
오므리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습니다.
그는 당시 매우 번성한 해안 국가였던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며느리로 데려 오는데,
이 여인에 의해 북왕국이 바알 신앙으로 물들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보냅니다.
엘리야는 악한 시대 상황을 바꿔보려고 목숨을 걸고 갈멜 산에서의 ‘대결’을 신청합니다.
갈멜 산에서 각자의 신에게 제사를 드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임을 증명해 보이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내려졌고,
그곳에 있던 바알 선지자들 450명 모두는 죽습니다.
그런데 왕비 이세벨은 눈도 깜짝 안할 뿐더러,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아합 시대의 불의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이 욕심난다는 이유로,
불량배들을 시켜 아무 죄 없는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나라를 공의롭게 다스려야 할 지도자의 수준이 이 정도이니,
그 사회 곳곳의 분위기가 얼마나 황폐하고 참담했을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오므리 왕조와 엘리사의 사역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의 사역은 선지자들의 생도를 교육하는 일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역 중에는 많은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한 선지자의 생도가 죽어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었는데,
너무도 가난하여 그 아들이 종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그 여인이 가져온 빈 그릇에 기름이 계속 채워지도록 해주는 기적을 베풉니다.
그런가 하면, 물에 빠졌던 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는 기적,
독이 든 음식에 가루를 뿌려 독을 없앤 기적 등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적 자체만을 보고 놀라워하고 관심을 가지지만,
기적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답답하신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빌려온 도끼를 돌려줘야만 하는 상황이니 도끼를 떠오르게 해야만 했고,
들에서 나는 풀을 따다가 끓인 국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기에 그 독을 없에야만 했던 것입니다.
선지자로 헌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가난과 고생, 고난의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엘리야, 엘리사 같은 기적의 능력만을 구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숲도,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예후 왕조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하신 하나님께서 오므리 왕조를 페하고,
예후라는 장수를 통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예후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을 진멸하고,
북이스라엘의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하는 결단과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단과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들은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유다의 다섯 번째 왕 여호람(요람)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하는데,
이 일은 우상 숭배에 찌들어 있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남유다로 확대되는 계기가 됩니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들 아하시야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유다 내에 바알 숭배를 퍼뜨립니다.
게다가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자기가 스스로 유다의 왕이 되어 왕의 씨, 즉 다윗의 후손들을 진멸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달랴가 왕자들을 모두 죽이려 하는 상황 속에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세바가 왕자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목숨을 구한 후,
아달랴 몰래 6년 동안 키웁니다.
결국 제사장 여호야다의 주도 아래 아달랴는 폐위되고 7살의 왕자였던 요아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요아스의 통치 전반기에 유다는 제사장 여호야다로 인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고,
성전도 새로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남유다는 또 다시 퇴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한편, 에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로 이어지는 북이스라엘의 예후 왕조는
다윗의 길이 아닌 여로보암 1세의 악한 길을 따릅니다.
특히 예후 왕조의 4번째 왕이자, 북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매우 번영했던 시대였으나,
하나님의 공과 의가 실현되지 못했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시대에 아모스, 호세아, 요나 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예후 왕조와 아모스의 사역
여로보암 2세 때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악행은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밤이 되면 매우 추워지므로,
이불이 따로 없는 가난한 노숙자들은 하나뿐인 겉옷을 덮고 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
가난한 사람에게 전당으로 잡은 옷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명시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시대에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고,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낮에 전당잡힌 겉옷을 찾지 못해 추위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여름궁, 겨울궁을 따로 지어놓고 상아침대에 누워서 살찐 양들을 잡아 요리하고,
대접에 포도주를 따라 마시며, 비파와 수금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모스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그들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은 타들어 갔습니다.
예후 왕조와 호세아의 사역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그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호세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당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있었는데,
바알 신앙은 바알과 아스다롯,
곧 남신과 여신이 서로 금슬이 좋으면 비가 풍족히 내려 농사가 잘 되고 풍요롭게 된다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자극하기 위해 신전에는 많은 여사제들이 있었고,
그 여사제들과 남신도들이 지붕이 없는 신전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생활이었습니다.
아마도 고멜이 이런 바알 신전의 여사제였던 것 같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고멜과 결혼을 하여 살아 가는 가운데, 고멜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고멜은 그런 남편의 사랑을 도무지 몰라주고,
이전에 행해오던 음행을 멈추지 못합니다.
이러한 고멜의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주는 북이스라엘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속 태우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품어 가는 가운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을 찢는 깊은 회개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탄하시며 답답해 하십니다.
요나의 사역
아모스,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도 요나를 보내십니다.
자세한 것은 블로그의 <요나의 표적>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6.2.20(토)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