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2:7 "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악(惡)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惡)이다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가 종전 직전에 사형 당한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악(惡)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라고 했다.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 악은 개인 차원으로 또는 국가적 차원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를 않고 인간 생명을 마음대로 짓밟고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악의 특징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사람이 아닌 쓰레기로 취급하였기에 그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9.11 태러범들 역시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을 살상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학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문제에 대하여 악을 범해 왔다.
악에 대하여 침묵하면서
오히려 그 악에 타협하여 평화롭게 살아 보겠노라고 하며 악을 저질러 왔다.
그렇게 지켜온 평화야말로 거짓 평화임을 느끼면서도 우리들의 타협을 합리화 하는 악을 범하여 왔다.
개인적인 악이든 국가적인 악이든 악에는 특징이 있다.
불행하게도 한반도의 반쪽인 북이 바로 그런 악으로 통치하고 있다.
천안함 공격이나 KAL기 폭파 만이 아니다.
백성들을 하늘이 부여한 인권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보지 않기에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도 눈 깜짝하지 않고 있다.
강제 수용소의 비참함은 이미 세계인이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인들은 애써 모르는 척하는 악을 범하여 왔다.
악을 햇볕처럼 포용하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여겨 왔다.
지식인인 척하는 자들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악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대정치가나 되는 듯, 무슨 미덕이나 되는 듯이 여겨왔다.
악과 맞서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악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악를 골라내는 것은 곧 사회의 평안을 구축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평안을 구축하는 길이고,
인류와 지구의 평안을 구축하는 길이다.
이런 것은 인간이 가야할 마땅한 길이고 인간이라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그러함에도 그것에 분명한 구별을 하여 입장을 세우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자들이 있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첫째,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살기 바빠 발등에 떨어진 '먹고 사는 일'이 급해 한 눈 팔 겨를이 없이 사는 사람들...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은 편파 왜곡 보도로 이런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있다.
불의한 세상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착하기만 한 사람, 순진한 사람...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좋기만 할까?
둘째, 진실은 알고 있어도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의한 일인 줄 알고 있어도 '내가 나서서 달라질 게 뭔가?'
혹은 '괜히 앞섰다가 손해 볼 일을 내가 왜 나서야 하는가?' 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이해 타산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게 선'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해 타산으로 세상을 본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요,
이해 타산이 판단의 기준이 돼 손해 볼 짓을 하면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철저하게 경제 논리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좋아한다.
오늘날 경쟁 만능의 이기주의 교육은 이런 인간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넷째, 변화와 연관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선입견이나 편견, 아집과 고정 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본질은 모르고 현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삶에 찌들려 앞뒤를 분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이해 타산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거나 그들의 편에 서서
떡고물을 얻어 먹겠다는 비열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황폐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떨 때 분노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자존심이나 명예 혹은 지위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 불같이 분노한다.
정치가 타락하거나 경제 정책이 잘못돼 큰 손해를 보고 있어도 그런 것에는 너무나 관대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
큰 손해에는 관대하면서 눈앞의 이익에는 한치의 양보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더 척박해지고 더 삭막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악을 악이라고 말 못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혹시 교회는, 노회는, 총회는?
불의를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오늘날의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죄없다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악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하는 것이다.
악에 맞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악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죄악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악한 시대의 공범자가 되는 일이다.
한 사람에게만 무거운 짐을 맡기지 말고 함께 외쳐야 한다.
2014.9.8
추석날 아침에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