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나라, 하나님 나라
<조병호 지음, 371페이지, 16,000원 (인터넷 교보문고 14,400원, 적립금 1,440원, 주문 다음 날 도착함)>
<저자 조병호 목사가 <마치면서 쓴글>을 정리해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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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과 수분
농부는 씨앗을 들고 흙이 있는 밭으로 가고 어부는 그물을 가지고 바다로 갑니다.
농부와 어부가 땀흘려 수고함으로 많은 사람의 식탁이 풍성해집니다.
그런데 농부와 어부가 수확한 것을 식탁에 올리려면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옛날에는 도공이 흙으로 빚어 뜨거운 불가마에 넣어 구워나온 그릇없이는
그것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토기는 농산물이나 해산물만큼 중요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토기장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 진흙과 같은 우리를 토기로 빚으시기 위해선
반드시 물이 필요합니다.
도공의 손에는 흙과 함께 물이 있어야 합니다.
도공은 쉼없이 흙에 물을 묻혀가며 원하는 토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흙을 주무르고 빚습니다.
이런 과정에 도공이 토기를 빚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진흙에 수분이 제공될 때까지만 입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는 B.C. 2000년경 아브라함, B.C. 1500년경 모세,
B.C. 1000년경 다윗, B.C. 500년경 예레미야를 통해 진흙같은 '제사장 나라'를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B.C.와 A.D. 경계선에서 토기장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를 빚으셨고
바울은 그 나라에서 촉촉한 수분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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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지시할 땅
B.C. 2000년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 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만 해도 1,800Km나 되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의 수많은 나라 가운데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시할 땅' 가나안으로 옮겨가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번에는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지시할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지시할 곳'은 다름아닌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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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거룩한 땅
아브라함 이후 500여 년이 지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네 발에 신고 있는 신을 벗어라.'
아브라함 이후 500년 만에 '지시할 땅' 과 '지시할 곳'을 넘어'거룩한 땅'이 드러난 것입니다.
드디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셔서
소극적 제국주의에서 적극적 제국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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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예루살렘 :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
모세 이후, 50여 년이 지나 법궤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안에 모셔집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왕이 된 후부터는 하나님께서 그를 더 이상 빚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빚을 수 없을 정도로 수분이 다 말라버려 딱딱하게 굳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달랐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를 질책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회개하며 그의 눈물로 촉촉한 수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을 새롭게 빚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그렇게 수분이 촉촉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제사장 나라' 안에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용서가 있고,
이웃과 이웃 사이에 나눔이 있으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가 있고,
성전과 장자로 이끄는 나라인 제사장 나라를
다윗이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고
다윗 스스로도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시민으로 늘 자신을 튜닝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이 꿈꾸었고,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셔서 솔로몬 시대에 건축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는 다윗이 다 했지만,
성전의 설계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전 설계도에 의하면 성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별되는데
지성소, 성소, 그리고 이방인의 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전은 대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지성소와
제사장 나라 거룩한 시민인 이스라엘 백성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성소,
그리고 모든 민족이 그곳에 가서 기도할 수 있는 이방인의 뜰로 처음부터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그토록 화를 내시며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내쫓으신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들이 이방인의 뜰을 없애버리고
그곳을 강도의 소굴로 변질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주셨던 제사장 나라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무엘의 표정에서 이미 충분히 나타나 있듯이
사실 제사장 나라와 이스라엘 왕정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왕정의 시작은 사무엘이 늙었을 때에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워낙 강력하게 왕정을 요구하자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정이 500년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제외하고 이스라엘 왕정은 제사장 나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을 들어 이스라엘 왕정을 종료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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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새 언약 : 마음속 성전
다윗 이후 또다시 500여 년이 지나
하나님께서는 에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아브라함 후손들과 새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에게
'다시 시작하는 제사장 나라'의 꿈을 심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사람들은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까지 불타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새 예루살렘에 대한 꿈과 함께
건물 성전이 아닌 마음의 성전 밑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남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70년 만에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 백성이기 때문에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었고,
왕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 나라를 다시 세울 수는 있었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에스라, 느혜미야 같은 지도자들과 함께
불타버렸던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며,
다시 제사장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 애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으나
냉소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병든 제물을 서슴없이 가지고 나와 드리는 일까지도 했던 것입니다.
말라기에서 마태복음 사이에 400여 년간 신구약 중간기 동안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을 차례로 등장시킵니다.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는 애굽 그리고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5대 제국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다시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시민으로 튜닝시키기 위해
들어 사용하셨던 몽둥이었던 것입니다.
신구약 중간기 40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 나라가 곧 도래 할 것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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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하나님의 어린 양
레미아 이후 또다시 500여 년이 지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의 말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월절의 어린 양'과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의한 제사의 정확한 이해 아래에서 나온 말입니다.
세례 요한의 말처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제물이 되시고,
직접 대제사장이 되셔서 제사를 집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사이에서 제사장 나라의 언약을 맺은 이래로
1500년간 지속되어 오던 제사장을 통한 제사의 종료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사이에서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아왔던 계약이 마침내 종료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는 선민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의 종료이자,
세상 모든 민족 나라들이 모두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의 시작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심으로
유월절 어린 양 이후 수없이 하나님께 바쳐졌던 어린 양 제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물되심은
단번의 제사로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사람의 죄를 한꺼번에 다 대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게 했고,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의(義)를 주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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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 : 하나님의 대사면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당하시다가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그러자 그때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휘장이 찢어 졌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던 장소였던 지성소와
이스라엘 백성만 들어갈 수 있었던 성소,
그리고 이방인의 뜰 사이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대제사장을 통했던 하나님의 사면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한센병 환자를 고쳐 주시고
그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예물을 드리라고 했던 것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였기 때문에 당연한 법이었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이후로
제사장이 병고침을 받은 한센병 환자에게
모세에게 명한 예물을 받는 것은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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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 : 제사장 나라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십자자가 이전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있었고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낙성식 기도를 통해 선언되었듯이
그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 뿐아니라,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효력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가 그때까지는 유효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복된 소식인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집니다.
물론 성전 그 자체가 제사장 나라는 아니었듯이,
교회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전을 말하지 않고는 제사장 나라를 말할 수 없듯이,
교회를 말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말할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 개개인이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인 교회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건물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모든 민족과 나라들은 누구나 제사장 나라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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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구원의 길이 아닌 사랑의 길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율법에 관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시면서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지 않으시고,
완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율법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은 가장 중요한 선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율법하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들이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내주신 가장 고상한 삶의 법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외식하는 자들의 삶을 사는 바람에
율법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율법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인간에게 내주신 가장 고상한 삶의 법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고상한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즉, 세상 모든 사람을 율법의 잣대에 비추어 보면,
어느 누구 하나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그 법을 완전하게 지키시고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제사법에 따라
십자가 위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제물이 되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삶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율법은 구약시대와 같은 강제성을 지닌 법이 아니고,
도덕적으로 우리가 지킬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행실입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613가지 율법 조항들은
인간의 삶을 품위있고 고상하게 하는 법들입니다.
예를 들어, 추수 때에 밭모퉁이 일부를 남겨 두는 것,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것,
등은 매우 아름다운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아름다운 율법을 삶 가운데 실천하며 산다면
우리의 착한 행실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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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사도 바울의 Kingdom Story
사도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로마 시민이었고,
유대인으로는 오히려 율법 학습을 통해 정체성을 세워 나갔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제사장 나라의 신성모독자라 생각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다메섹 도상의 바울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뉘십니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즉시 예수는 주라 선언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후,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이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이후에 로마 사회의 근간인 노예제도를
뿌리째 흔드는 일을 과감하게 들고 나옵니다.
도망나간 노예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보내며
노예 오네시모를 형제 오네시모로 받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 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척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다 같이 함께 살자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주의 나라를 사는 작은 예수,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곁에서
작은 예수, 사도 바울의 Kingdom Story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우리의 Kingdom Story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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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22(금) 02: 05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