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외버스정류소 걸상에 있었던 전도지 (2013.7.31 오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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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21: 21-27)
2006-3-26 인쇄
사람들은 천국이나 극락 같은 곳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들에게 ‘좋은 곳’에 가라고 빌어준다.
사후세계의 실존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은
영원불멸의 삶을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귀영화 권세의 덧없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80-90세를 넘기지 못하는 인간이
일회적 삶을 살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고 허무하다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후세계에 대하여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죽어서 가보면 저승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어렴풋한 느낌만 있을 뿐이다.
제대로 아는 자가 없다보니 추축만 난무하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이 있다면 왜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가 하고
원망 섞인 불평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국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이 비성경적일까?
그리스도인들까지 천국에 대한 거부반응을 가진 자들이 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낙원 정도의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 세세히 알려고 하는 것은 이단들의 미혹을 위한 술책이라고 몰아붙인다.
교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국에 대해서 아는 자가 별로 없다.
어느 기업인이 죽음을 앞두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납득할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예수를 믿겠노라고 했다.
= 아래의 주 참조
그래서 목사, 신부들을 불러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나
그 어느 누구도 꼭 마음에 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 유명한 기업인은 결국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고 불교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그 유명하다는 목사님들이 돈 많은 부자 앞에서 천국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아는 지식 외에는 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사는 곳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천국 본향에 있다.
매일 천국을 그리워하고 묵상했다면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천국에 대하여 책을 쓰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지만
이 제한된 지면에서는 천국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만 밝히고자 한다.
천국을 설계하여 건설하신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당시 천국을 말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마13:14)
왜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는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천국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고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으며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셨고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 하셨고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하셨다.(마 13장)
이 정도의 비유를 가지고 천국의 모습을 그려볼 수는 없다.
천국의 소중함과 그 가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대하여 알 수 있는가?
천국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천국 영광을 본 증인들 가운데 가장 신빙할 만한 사람들은 물론 성경 인물들이다.
천국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고 그 외 다니엘, 에스겔, 바울 등이다.
성경 인물 외에도 천국에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잠시 죽었다가 갔다 오는 길이 있고,
몸은 땅에 두고 영체만 몸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경우도 있고, 꿈이나 환상으로 천국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성경 이외의 인물들이 말하는 천국 증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서도 천국울 보고 왔다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추세이다.
그러기에 천국을 적당히 아는 것은 괜찮지만
많이 알고 전하는 것은 천기누설죄에 걸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고달픈 나그네 삶의 여정이 더더욱 힘들다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아마 천국에 대하여 확실히 알지 못했다면
본향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졌을 것이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천국 방문자들의 증언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진위를 가려내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그 증언이 성경과 일치한다면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 분석하여 공통점을 찾으면 신빙할 만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꼼꼼히 따지고 살펴서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만 치부한다면
천국에 대하여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천국은 우주 안에 실존하는 장소이다.
천국은 영계인데 어떻게 물리적 세계인 우주 안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의아심을 가진다.
우주가 전부 물리적 세계라는 것은
인간이 태양계 밖을 탐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잘못된 세계관이다.
천국이 우주 안에 있어도 영계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영계이면서도 물질적 세계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릭 사우어는 “영원 속에서도 ‘물질적인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고
“구체화는 하나님의 모든 방법의 궁극적 목표이다”라고 했다.
영원세계는 무공간적, 무시간적, 비물질적인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워진 육체 안에 있는 지극히 복된 부활과 생명과 물질적으로 변모된
우주 안에서의 거룩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구체화된 세계이다.
영원세계는 비유나 상징 이상의 실제적이며 영적으로 구체화된 실체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육체적 요소가 없는 순전히 관념적 상태의 세계를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시적 세계가 변화되는 새로운 창조의 영원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어서 몸을 붙들려 매지 않으면 붕붕 떠다닌다.
천국도 무중력 상태와 비슷한 환경이지만 우주의 다른 무중력 상태와는 다르다.
땅에서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다나며 산책을 즐길 수 있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는 땅을 밟지 않고 떠서 날아다닌다.
이것이 우주의 물질세계와 다른 점이다.
이것은 천국 방문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기에 믿을 만하다.
천국은 우주 안에 있으면서도 중력도 무중력도 아닌 특수한 법칙이 작용하는 신묘막측한 세계이다.
천국이 우주 안에 있다면 과연 그 위치는 이디인가?
천국은 지구 북쪽에 위치해 있다.
하나님이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셨다고 하셨고(욥 26:7),
하나님의 두려운 위엄이 있는 북방에서 금빛이 나온다고 하였다.(욥 37:22)
루시퍼는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고 하였다(사 14:13)
여기서 ‘북극’ (the farthest sides of the north)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에서 볼 때 북쪽의 먼 곳을 가리킨다.
시편 48:2에는 북편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성에 자리 잡은 시온산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데
높이는 일이 동쪽도 아니고 서쪽, 남쪽도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시 75:6)
그것은 높이는 일이 동,서, 남이 아닌 북쪽임을 시사하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지구 북쪽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이 북쪽에 있다면 어디쯤 있는 것일까?
북쪽으로 아주 먼 곳이라는 것은 ‘북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천국 방문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천국 방문자 박용규 목사와 메리 캐서린 백스터(Mary K Baxter)는 천국이 은하계 서편에 있다고 하였다.
천국 방문자들은 천국의 위치를 ‘은하계 저편’
또는 ‘은하계 건너편‘ 등으로 말하여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성경에서 천국은 ’위'(up)나 ‘북쪽’(in the north)에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북쪽이 북극성 방향에 있다고 말한다.
세네카 소디는 태양계를 넘어가지 못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천사에게 천국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천사는 ‘멀지 않다’고 했고 얼마 안가 밖을 내다보니 벌써 천국에 접근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태양계를 막 벗어나려는 지점이 은하계 저편 또는 은하계 건너편으로 표현된 것 같다.
제시 듀플란티스(Jesse Duplantis)는 천국은 멀지 않으며 은하계를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천국 방문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천국은 태양계를 지나 은하계 경계선상에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계를 지났다고 하였다.
태양계는 은하계 변두리에 있다.
그러니까 태양계를 지나는 지점이 은하계 변두리인 셈이다.
천국을 직접 방문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학구적으로 천국을 연구한 피터 러크만 박사는
천국의 위치를 말할 때 ‘북쪽을 향해 있는 그 하늘의 장소 위는 영원세계(eternity)이다.
이곳은 초속 150,000마일로 북쪽을 향해 여행한다면 500년이 걸리는 지점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이곳을 ‘15억만 광년 거리에 있는 하늘’이라고 그의 계시록 주석에서 밝혔다(한국판 320 페이지 참조)
천국은 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은하계 안에 있으므로 은하계 변두리, 또는 은하계를 막 벗어난 지점에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현대 과학은 100억 광년의 별도 관측하는데 어째서 천국을 망원경으로 포착하지 못하는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122억 광년 거리에 있는 은하단을 관측한 바 있는데
2005년 2월 17일에 일본의 스바루 망원경은 127억 광년 저편의 은하단을 발견하였다.
우주의 크기가 137억 광년인데 127억 광년까지 손길이 미치고 있다면
가까운 은하계 변경의 천국이 포착되지 않는 점이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천국은
우주의 다른 영역과 완전히 다른 세계이므로 지구에서 멀지 않다 할지라도
지상의 망원경으로는 찍을 수 없다.
그곳은 물질 세계라고도 할 수 없고 영계라고도 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 곧 우주의 물질 세계를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천국에 대하여 쓸 글이 너무 많다.
그러나 천국이 우주 안에 실재하는 세계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대한 입문을 통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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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굴지의 재벌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남긴 24개 질문이 공개되면서 세인들의 많은 관심의 화두가 되었다.
질문을 남기기 2년 전 이 회장은 폐암진단을 받았는데,
진단 후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를 만나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 수는 없다.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차분히 떠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理想)에 지나지 않고
적어도 살아서 아둥바둥하는 흉한 꼴만은 남에게 보여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폐암 진단을 받고 2년째 투병 중이던 이 회장이 무슨 목적이었던지
인간과 신, 그리고 종교에 관하여 질문지를 만들어 전 카톨릭 박희봉 신부에게 전했고,
그것을 정의채 몬시뇰이 보관하고 있다가 24년 만에
정몬시뇰의 제자인 차동엽 신부가 이 답변을 묶어 "잊혀진 질문"이란 책으로 출간했다.
첫 질문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하는 것으로 종교의 급소를 찔렀고,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종교가 없어도 , 종교가 달라도 착한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또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와 같은 자신과 연관된다 할 수 있는 질문을 하였고
마지막에는 "지구에 종말은 오는가?" 하고 질문을 하였다.
이 회장의 질문을 분석해 보면 삶과 죽음, 인간과 신, 과학과 종교에 관한 본질적 질문으로,
첫 질문은 "시작"에서 마지막 질문은 "끝'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이 질문을 통해 어쩌면 자신의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고(故)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 중에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나약한 인간으로서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이 가슴이 와닿는다.
또한 한 개인의 처철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의문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들의 의문이고
어쩌면 자기 삶에 대한 자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2013. 8. 1 아침
이우길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