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현장의 유적과 유물
이집트 국립박물관의 '바로'왕 미이라
이집트의 공주 '합셉투스' 모세의 양어머니
홍해의 위성 사진1
홍해의 위성 사진2
영국 해군이 항공 촬영한 홍해의 해저 분석 사진
양쪽 계곡에서 흘러 나온 토사로 바다가 메워져 있다그래도 깊은 곳은 200m 경사 6도
솔로몬이 세운 홍해 횡단 기념비,
성경에는 없지만 돌기둥에 새겨진 히브리어 판독결과 알아낸 것임
바다 양쪽에 세워졌는데 사우디 쪽의 것은 없어지고
있었던 자리만 표시로 남아 있다
“지금의 시내산은 진짜 시내산이 아닙니다”
김승학 지음/두란노/408쪽/2007년
사우디 아라비아 지도에 나타난 시내산
<떨기나무>를 쓴 김승학 집사와 그의 다섯 식구가 이 여행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틈만 나면 북부 사우디아라비아를 탐사한다.
칠년 동안에 그곳을 열두 차례나 탐사함으로써
그는 왕자의 주치의라는 직책에 미디안 탐사 전문가라는 이력도 하나 더 보탠다.
중동 붐이 한창 일던 80년대인 1987년에 청년 김승학은
침술 의료인으로 사우디에 돈 벌러 나간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고
마침내 그의 영험한 침술 소문은 메카 주지사인 마지드 왕자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당시 목 디스크를 심히 앓고 있던 왕자는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침술로 신통한 효험을 본다.
이를 계기로 하여 그는 왕자의 주치의로 들어가 화려한 상류사회와 교류한다.
2000년에 잠시 조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친께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한다.
“어떤 분한테서 이 테이프를 입수했다.
이 테이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있는 어떤 산이 진짜 시내산이라고 하는데,
아주 성경적이더구나.
네가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으니,
있는 동안에 네가 기도하면서 사실을 확인해 보면 좋겠다.”
그 비디오 테이프는 탐험가 론 와트와 그의 아들이 몰래 미디안에 잠입하여 찍은 <디스커버리>였다.
부친의 부탁은 그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준비를 꼼꼼히 하고서 2001년 3월에 첫 탐사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탐사는 귀국하기 바로 전인 2006년 7월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는 탐사를 다 마치고 다음의 주장을 편다.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진짜 시내산이 아닙니다.
그 근거로는 아홉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진짜 시내산은 미디안 광야, 즉 오늘날의 북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여덟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에 들이댈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는 죽을 고비도 넘기며 이 지역을 두루 답사한다.
사진으로 찍고 수많은 자료들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으며,
또 유물들을 직접 채취도 하고 수집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 흔적이 미디안 지천에 널려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고고학자도 성경학자도 미국인이나 영국인도 아닌 한국인이었다.
구약학자들과 역사가들이 애써 외면해야만 하는 진실을 이제는 말한다.
20년 동안 이국땅과 이교도 땅에서 숨죽이며 찾아낸 역사적 산물들을 가감없이 담대하게 말한다.
그는 말한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날 때가 있다고!
타무딕(Tamudic)’이란 언어들은
북부 아라비아에서 '나바타(Nabataea)'인 언어도 '아랍(Arab)'어도 아닌
그렇다고 이집트어도 아닌 누구에 의해서 왜? 암각화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을까?
진짜 시내산의 엘리야굴
홍해 변에 세워진 솔로몬왕의 홍해 횡단 기념 기둥들의 현장과 수르광야.
시내산 인근에 이드로의 집터들과 십보라를 처음 만났던 우물을 일러 ‘모세 우물’이라니!
엘림 그 현장들을 일러 ‘모세의 눈’ 이라 한다.
르비딤 반석과 물이 터져 솟구친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의 현장들!!!
아말렉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여호와 닛시’ 단
반석에서 흐르는 물을 광야로 끌어간 고대적 수로.
수로가 끝나는 지역에는
수십만 개 아니 그 이상의 주거흔적들
눈으로 확인된 시내산과 호렙 동굴.
그리고 시내산 아래에는 야훼(YHWH)께 드린 희생제를 드린 제단이
시내 광야에서 발견된 아론의 금송아지단.
그 단에는 3500년 전에 애굽인들이 섬기던 하토르(암소 신)신이
이스라엘 12부족을 대표하여 12마리나 암각 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 12부족을 알리는
12돌기둥 그리고 산 전체를 두른 지경.
산에서 흐르는 시냇물, 아직도 이드로 집터에서
성산 아래로 흐르는 건강 줄기를 ‘모세 강’이라니 모세 우물과 이드로 동네.
물샘 열두 곳과 종려나무 숲
성경말씀의 끝없는 일치!
수 천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서 고고히 감추어져 있던 신의 비밀을 밝힌다.
금촛대 암벽화하나님이 지시한 식양대로 만든 촛대
만나를 찧던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절구통
홍해 그리고 얌쑵 그리고 갈대바다 막힘없이 거침없이 토해내는 구약 모세 5경의 비밀들을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구름과 흑암이 가득하던 그 현장을
구름 속에서 나팔 소리가 진동하고 친히 돌 판에 십계명을 썼던 그 현장을 밝힌다.
특수부대와 비밀경찰 그리고 훈련된 유목민들이 계곡을 쥐 잡듯이 돌아다니는 그 현장을
목숨을 건 한국인 한 가족이 그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잡히면 죽는 위험천만한 숨바꼭질을 무려 12차례나.......
아내의 머리채가 그들의 손에 끌려가고 어린 딸 아이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긴 칼날을 번득이며 독기어린 눈으로 그들의 욕심을 채우려했지만
“여호와 이레”로 준비된 장난감 총에 그들은 손들고 말았다.
그래도 사막 광야의 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모세의 발자국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문을 찾아 다녔다.
막연한 야훼 하나님은 고대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단순한 신 이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
그 뜨거운 미디안 광야 한가운데서 마셔도 목마른 광야를 종횡무진 지프차로 달리며
소 발로 밟고 찾아낸 값진 자료들.
전 세계를 뒤흔들 3500년 전의 전설을 다시 살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야훼 하나님께 택함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고귀한 성스런 성산은
그들의 원수들 손에 군사기지로 변모되어 그들의 손에 의해 보호 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부름
1987년 어느 날 해외 개발공사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사우디로 진출을 희망하는 의료요원들을 선발하기위한 영어 통역부탁을 계기로
1987년 사우디로 출국.
1987년 사우디 지잔 파드왕립 병원에서 최초로 침구과 운영.
1988년 제다지역 제다종합병원에서 침구과 개설
각 사우디 일간지 대서특필로 한국인 침술의 우수함을 지면을 통해 본 메카주지사의 부름.
수술 직전의 메카 주지사였던 마지드 빈 압둘아지즈왕자(H.R.H Prince Majed Bin Abdulaziz)의
목 디스크를 침술로 완치.
1989~2003 왕자 사망까지 주치의.
왕자 사망 이후 그의 이복형이던 압달라 국왕으로부터 주치의 제안이 있었지만
시간을 끌며 2006년 8월3일 출국까지 9차례 더 성지 탐사하여 귀국.
현 평택 박애의료제단 박애병원 이사겸 행정원장. 평택 동산장로교회 협동안수집사.
중동지역 갑부들과 국가원수들을 치료.
외무부장관표창. 주 사우디 특명대사 표창. 차드공화국 영부인표창. 메카주지사 표창.
시리아 공화국 대통령 의전실장 감사장.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립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초청.
5개월 부족한 20년 동안 사우디 생활
왕위 서열에도 드는 왕자의 양 아들을 종교적인 이유로 거절한다.
틈나는 대로 평균 거리 3,000km를 주행하며 비밀 아지트를 무려 12차례를 드나들며
죽음의 문턱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안내로 하나님의 비밀 창고를 보여주신다.
12차례에 걸쳐 36,000km를
가족과 함께 미디안땅 북부 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 그리고 요르단 일대를 자동차로 달렸다.
거의 지구 한 바퀴를 돈 거리다.
아내와 8살 아들, 10살과 12살난 딸아이들이 한밤중에 비밀경찰들에게 잡혀 가고
칼과 총으로 위협하는 그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았고
가는 곳곳마다 나의 눈이 되어 준 베두인(아라비아 유목민) 형제들의 따뜻함은
영원한 기록이 되리라.
수집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의 흔적과 바위에 암각된 글씨와 그림들은
더 이상 비밀로 간주하기엔 곤란하게 될 것이다.
김승학 집사의 탐사
그러나 감추어진 것은 드러날 때가 있나니…… 라는 말씀에 위로를 받는다.
바위에 암각된 고대 히브리어들이 해독이 되면 돌들이 입을 열어 말할 때가 오리라.
하지만 고고학자도 아니요 성경학자도 아닌 한 개인이 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일에는 더 엄청난 무리가 따르리라.
기라성 같은 학계의 학자들과 체계적으로 고급과정의 학습을 마친 박사님들
그리고 전래되는 역사적 사실만을 끝까지 고집할 지체 높은 분들의 바운더리를
흠집 내는 격이 되겠지만 틀림없는 말씀의 현장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확연한 것들은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떠한 난관이 오거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명은 이루고야 말리라.
공관복음 여러 곳(마21:9, 15. 막11:8~9, 눅19:40, 요12:13)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실 때 어린 아이들이 종려 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고 제자들과 어른들은 예수님이 타실 나귀와 길에다가 겉옷을 덮고 깔며
주님을 환영했지만 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세인과 유대교권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을 막으려고 힘을 썼다.
예수님이 돌아보시고 외치시는 말씀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고 말씀하신다.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손에 만지듯이 다가오는 3500년 전의 그 역사의 현장들이
한갓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그 역사의 현장들을 밝힌다.
일점일획의 허구도 없었던 그 사실들을........
막연하게만 믿던 신신학자들은 애굽에서 일어난 10 가지 재앙을 놓고 그들은 말한다.
나일 강이 붉게 물든 것은 피가 아니라 적조현상이고
메뚜기 때와 파리 때나 개구리들이 나타난 것은 아직도 그런 현상이 있을 때가 있다고 주장하며
애굽 장자들이 죽은 것은 전염병이 돌아서 죽었다고.
하지만 세상에 장자만 골라서 죽이는 바이러스가 어디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면역체가 있었는지 양피를 문설주에 바른 그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시내산! 호렙산!
이 땅 어느 곳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들과 대면한 곳이 없었지만
유일하게도 그 성산인 시내 산은 하나님이 위엄을 보여주시며 강림하신 성지중에 성지이다.
그곳은 태고적부터 하나님께서 관리하시고 계신다.
기독교를 가장 적대시하는 이교도들
즉 이스마엘 후손들의 손에 부치셔서 35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계신다.
이제 세미한 음성으로 택함 받은 주의 종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함께 뜻을 모으며 한점의 욕심도 없이 오로지 여호와의 영광만이 이 땅에 가득할 때까지
그리고 게달의 양 무리들이 모두 모여 하나님의 단에 드려져 하나님께서 기쁨이 충만할 때까지
이 일들은 멈추지 아니하리라.
다빈치 코드와 예수님의 무덤사건,
그리고 김?? 교수의 망설들이 수많은 영혼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다.
영 에이지 운동과 인터넷 매체의 급속 확산으로 온통 세계는 하나 되어 가고 있다.
시날 평지에 세워진 바벨탑이 다시 이 땅에 서서히 기초를 세워간다.
불신의 안목들과 영분별이 어두워진 이 땅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손길들을 모으시고 계신다.
어떠한 개인의 욕심이나 사심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지런히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사심없이 여호와의 영광만이 이 땅에 가득하게 하기위해서.
3500년의 역사의 뒤안길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선지자들을 부르시던
그 현장이 선민이라 자칭하는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의 손이 아니라
그들의 원수와 같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에 의하여 최첨단 무기로 그곳을 지키는
이 아이러니한 현상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다보아야 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손을 통해 땅 끝과도 같은 한국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바란다.
사우디는 우리와는 영 딴판인 나라다.
자국민이라도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마음대로 어디나 다닐 수 없는 나라다.
여행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남다른 외적 조건이 그에게 없었더라면 북부 사우디 탐사는 불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그 조건들을 열거해 보면 이렇다.
왕자의 주치의라는 신분, 왕자가 하사한 자동차에 고위층이나 달 수 있는 특별 번호판을 부착한 것,
왕자의 이름으로 등록된 자동차 등록증, 왕자의 여행허가증명서, 유창한 아랍어 구사 능력,
이슬람의 문화에 아주 익숙한 점. 아무나 쉽게 갖출 수 있는 조건들이 아니다.
이런 조건들을 선용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따져볼 게 있다.
시내산 역사 왜곡은 왜 일어난 것인가.
그것은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해결의 소산으로 보인다.
AD 527년 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순례객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나이 반도의 무사산 북서쪽에 캐더린 수도원을 세우고 그곳을 시내산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학계의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시내산 왜곡은
순례객의 종교적 감정의 과잉 배출을 해소시켜주려 한 교황청의 선의적 해결책 정도로 보인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장소나 건물을 성스럽게 보려는 인간의 종교적 욕망과
교회의 정치적 해결이 합작해 낸 역사 왜곡이라는 오명은 씻을 길 없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
1. 시나이반도는 당시에 애굽의 땅이었다.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에 의해 1967년 침공당하기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이나 점령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애굽 땅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 영토인 그곳으로 돌아가서
11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홍해는 시나이반도를 중심으로 양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원팔 끝은 수에즈로 연결되고 오른팔 끝은 아카바이다.
만약 전승되어 온 것 처럼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이 시내산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미디안 땅에 왔다가 다시 홍해를 건너오든지
아카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억지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2.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시나이반도의 모양은 역삼각형으로 반도 북쪽으로는 지중해이며
서쪽 윗부분은 수에즈만과 수에즈운하,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동쪽 윗부분은 아카바만을 사이에 두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연결한다.
시나이반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나반도는 6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이나 점령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석유 수입 경로를 차단한 이집트를
1967년 침공해서 6일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이후 1982년 4월까지 15년 동안 이스라엘이 시나반도를 다스렸다.
하지만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 협정을 맺음으로써 이 땅은 다시 이집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 15년 동안 시나이반도에서 여러가지 지질조사와 군사훈련을 펼쳤으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은 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짓기에 이른다.
(The Jewish Encyclopedia Vol.14)
만약 시나이반도의 무사산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의 흔적을 발견했더라면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가 찾아 온다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반도를 절대로 이집트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3.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천여년 전부터 (신=시나)라 불렀다.
시나이의 어원은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 말 '신(Sin)' 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달신(月神)을 섬긴 데서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성경고고학자 알프레드 하워드(Alfred J. Howorth)의
저서 '고고학과 구약성경'(Arcbaeoology and the Old Testment)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은 '아누(Anu)'이고 차등에 해당하는 달신은 아브라함 당시에
우르 지역에서 '신(Sin)'이라고 했다.
그 이전에는 '난나(Nanna)라 하여 어둠, 달, 음력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이 달신인 신은 아라비아 전 지역과 시나이반도로 급속히 전파되어 갔다.
'마루둑(Marduk)은 태양과 마술의 신으로 추앙받다가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으로 등극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000여년 전부터
시나이반도는 (신=시나)이라 불렀다.
4.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기원 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로마가 그리스도인을 살육하는 등 박해가 심해지자
황제 클레오티안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직업을 박탈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자굴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게 되자
주로 이집트 주위의 예수믿는 자들은 그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여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 피했다.
2세기 초부터 일부 그리스도인과 은둔자와 수도승들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두인과 이교도의 습격이 예상되자 이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헬레나는 아들을 통해 지원군을 보내어 이 수도사들을 보호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박해를 중지시키고 기독교의 신앙을 공인했다.
지하에서 숨 죽이며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얻자 성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강립하시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성스러운 산인 시내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성경고고학의 대가였던 요세푸스는 성경 말씀에 근거 해서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레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못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배기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다.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버린 것이다.
순례객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급조된 조치였다.
그때 이후로 줄곧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기록에도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5.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기까지 11개월 5일 동안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밤에 출애굽해서 홍해를 건너고 엘림과 신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들어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의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쫒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5일 동안을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 애굽 왕자로서 애굽 땅을 잘 아는 모세가
애굽 군인들이 많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갔을 리는 없다.
모세는 애굽 왕자로서 40년을 살았다. 그래서 애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시나이반도의 무사산에는 지금도 구리와 터키석을 비롯한 광산이 있다.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애굽 군인들의 추적을 따돌려야 하는 모세가 일부러 무사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갔을 리는 없다.
7. 시나이반도는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Km나 떨어져 있어서 성경과 다르다.
르비딤에 당도한 후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르비딤과 호렙산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나이반도의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는 48Km나 떨어져 있어서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8. 시나이반도의 무사산 앞에는 25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앉을만한 광야가 없다.
하나님이 성산에 임재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며 떨었다.
그렇다면 성산 앞에는 25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들어앉을 수 있는 광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나이반도의 성산 앞에는 온통 협곡들로 가득해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만명조차 들어가 앉을 광야가 없다.
9.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무사산까지는 육로로 올 수 있는 길이다.
홍해를 건널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홍해를 건넌 사건이 거짓말이란 말인가.
이집트 국립박물관의 고대 애굽병거
진짜 시내산이 미디안 광야에 있는 8가지 이유
이슬람 종주국!
제사장 나라에 인접한 나라!
석유 최대 매장과 최대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
성경책의 반입이나 종교 관련책자 혹은 십자가 액세서리나
사진마저도 불허하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일체의 타 종교집회가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 사우디!
지난 1987년부터 2006년 8월 3일까지 20년을 그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16억의 이슬람인들이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하는
회교도들의 성지인 메카주지사의 왕궁에서 개인 주치의로 16년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AD 527년 시나이 반도의 한 산을 출애굽하고도 1700여년이 지난 다음 로마 교황청에서
일방적으로 시내산으로 명명한 후 더 이상의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을 통해 시나이 반도가 아닌 미디안 땅에서 그 비밀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게달의 양무리가 모여지며 느바욧의 수양들이 단에 올라 기꺼이
하나님의 단에 바쳐져 하나님의 집을 영화롭게 하는 일 들입니다.
그리고 감추어져 있던 성산!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산!
엘리야를 부르셔서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셨고
모세에게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흑암과 구름 속에서 나팔소리로 다가오셔서 십계명을 주신 성산!
그 땅이 천하 만방에 알려져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할 때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겠습니다
그 땅은 창25:12~18절의 기록처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모세가 바로왕궁에서 도망가 40년의 미디안 광야 생활을 한 곳 이기도 합니다.
그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신 곳이기도 합니다.
그 땅은 사도바울이 3년의 세월을 보낸 곳 이기도 합니다.
그 땅은 3500년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땅은 성경 말씀과 모두 일치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보았습니다.
그 땅에는 정말 거룩한 성산이 있었습니다.
2012.12.21
이우길 집사 옮김
2012.12.27 가필
(사도행전7:29) 분명히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땅은 예로부터 미디안 땅이라고 불리어 왔다.
미디안 땅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미디안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고지도에도 명시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창25:1-3)
즉 미디안은 아브라함 후처인 그두라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미디안 형제 가운데 한 명인 욕산이 드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알 울라라는 고대 도시가 드단이다.
알 울라에 있는 박물관과 그 지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는
알 울라의 옛 이름이 드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는 지금도 수천년 전의 나바테아인의 유적이 수도 없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나바테아인은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의 장자 이름이고,
한국어 성경에 '느바욧'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2.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이미 아라비아와 미디안에 관해서는 명명백백하게 구분해 말씀하신다.
구약 성경이든 신약 성경이든 오래 전부터
이미 아라비아나 미디안, 그리고 애굽을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
3. 애굽왕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간 곳이
성경에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모세가 도망간 곳이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세가 도망하여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서 살았다는 구절은 있어도
시나이반도에서 살았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가 살고 있는 미디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12)
미디안 땅은 아라비아에 있는 것이 확실하며 시나이반도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시나이가 한 번도 아라비아에 포함되었거나 미디안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이 말씀을 새겨 볼 때 시내산은 바로 미디안 땅에 있는 산인 것이다.
5. 홍해를 건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물을 찾아 사흘 길을 헤매다가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성경학자들은 수르 광야를
시나이반도 북부지역 불레셋 사람 땅의 길 조금 아래지역에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항상 우리는 말씀을 근거로 해석해야 하는데
몇몇 단체나 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은 우리를 미혹하게 하거나 혼동케 한다.
아라비아 홍해 변에 수르라는 족장이 이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지역을 수르 광야라 하며
그는 미디안 사람이었고 미디안은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민25;15)
6.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분명히 아라비아 사람이요,
미디안 땅에 산다고 했지, 시나이에 산다고 한 적이 없다.
이드로의 집터는 지금도 아라비아 북서쪽에 바드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
그런데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 도시실에 놀랄만한 지도가 발견되었다.
바로 바드옆에 이드로(Jethro)라 표시된 지도였다.
또한 이스람 경전에서는 모세의 장인을 이드로라고 명시해 놓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사본에도 바드라는 지역에 모세의 장인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바드에서 라오즈산까지는 와디 무사를 따라 3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와디(Wadi=평소에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물이 흐르는 골짜기)
무사(Musa=모세의 아랍식 이름)는 라오즈산에서 발원되어 바드 앞을 지나고 있다.
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족과 전투를 벌렸다고 했는데
아말렉족은 미디안 광야 인근에 살던 아라비아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이 부르셨던 곳인 호렙산에 도착한 장소가 르비딤이다.
거기서부터 아말렉족들이 뒤처진 약한 자들과 아녀자들을 잡아가자 아말렉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아론과 홀은 모세의 피곤한 팔을 잡아주고 여호수아가 나가서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로 이끈다.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 태어난 이스마엘의 장자가 느바욧이고 그 다음이 게달이다.
에서는 느바욧 누이 마할렛과 결혼했다.
그런데 아말렉은 어떤 민족인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에게서 아말렉을 낳았다고 하고
아말렉 족장은 에돔 땅에 있다는 말씀을 보면 이들은 분명 에서의 후손들이며
에돔 땅 인근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