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그리운 인간극장

그리운 인간극장

천국백성 2012. 4. 2. 21:57

그리운 '인간극장'

 

 

우리집 캐리 <석진영 집사 '하이도그'에서 이발함 (12.4.8 )>

 

 

 

내가 직접 만들어 본 무말랭이 <충효동 전영두집사 밭에서 직접 농사지어 얻은 무와 고추잎으로... 자세히 보면 오징어포와 통깨도 있습니다>

 

 

감주 아내 있을 때에 사이다 콜라 등의 음료수 대신 감주를 자주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만드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지요.

 

민들레 김치 (한국 최고건강식품)

 

 

원료는 김영환집사 암곡 사과밭의 흰꽃 & 노랑꽃 민들레 (12.4.12 적기)

부추, 쪽파, 참쌀+들깨가루 풀, 홍고추, 마늘, 생강, 양파, 고추가루(2종류),

통깨, 멸치젖 ,까나리액젖, 매실액

만드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으로...

 

 

아내가 특히 좋아했던 '가죽'

 

고추장에 찍어서 향기내며 아싹 아싹 씹는 소리가 들립니다.(2012.4.24 역근처 새벽 시장에서)

 무김치 열무양파,고추마늘생강 ,고추가루미가루풀생수

 

 

 

정원에 핀 크레마티스(분홍) 2012.5.5

 

정원에 핀 '매발톱 자이언트 믹스' 2012.5.5  

 

정원에 핀 크레마티스(파랑) 2012.5.5

 

안성주물 초미니밥솥(1인용) : 4만원+택배2700원 무쇠솥의 밥맛 !  누룽지의 고소한 맛 ! 경기도 무형문화제 45호. 참기름으로 솥 길들이기 2012.5.12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울철 냇물이 차가울 때

아버지께서 날 등에 업고 건네 준 생각이 납니다.

과수원에서 농약을 치는데 누나와 함께 펌프질을 해가 지도록 한 기억도 납니다.

 

 

여름철 일을 끝내고 캄캄한 저녁에 모두들 냇가로 가서 목욕하는데

동네 여자들은 위 쪽에서 남자들은 아래 쪽에서 했는데

후레쉬를 비추며 모두 깔깔대고 장난치던 생각이 납니다.

 

 

큰 도로 아래 쪽에 있는 사과밭에는 원두막이 하나 있었고

큰 도로 위 쪽에 있는 사과밭에는 원두막이 2있었습니다.

모두 불을 때는 구들도 있었고 윗층에는 청마루도 있었습니다.

아래 밭 중앙에 우물이 있었는데 물이 좋아

동네 사람들이 자주 물을 길러 갔습니다.

물맛이 좋고 머리 감을 때 매끄럽다고 했습니다.

 

 

집 앞 도로변의 뽕나무 밭의 한쪽 모퉁이에는

말무덤도 있었고

밭 가장자리 둑에는 복숭아 나무가 있었는데

올 복숭아도 있었고 늦게 수확하는 재래종 까칠 복숭아도 있었습니다.

 

 

 

윗 과수원 오른 편에는 큰 물웅덩이가 있었고

고기도 많았습니다.

윗 과수원 맨 위쪽에 큰 물 웅덩이를 만들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기도한 후에 물 웅덩이를 팠습니다.

가뭄이 들 때 과수원에 물을 대기 위함이었습니다.

 

 

사과 품종은 국광, 홍옥, 이와이, 골덴. 아싸이 등이었고

배나무와 복숭아 나무도 있었습니다.

사과나무 사이에 참외와 수박도 심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접는 칼이 사과 과즙에 반응하여 시커멓게 된 그 칼이 기억납니다.

 

 

아버지께서는 첫 수확을 하여서는 교회 목사님께

제일 좋은 것으로 제일 먼저 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 초등학교에도

한 상자씩 갔다드리라 하여

해마다 내가 리어카로 갔다드린 기억이 납니다.

교회에서 하기어린이 수양회를 할 때는

여러 상자를 제공했습니다.

 

 

 

중학교 다니던 때 였습니다.

아버지께서 10일 작정하고 물 한방울도 드시지 않고

금식 기도한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울었습니다.

하나님 계신 것을 우리 자식들에게 보여주신

큰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기억도 생생합니다.

어머니없이 아버지 따라 새벽에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린 저를

하나님께서 보셨는가 봅니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사과를 저장고에 넣어 보관하였습니다.

마당 옆 땅속에 저장고가 있었으나

맞은 편에 큰 저장고를 새로 지었습니다.

두께가 1미터나 되는 큰 저장고 였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고 집 앞 늪에는

청둥오리 떼가 해마다 날아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사용할 지게를 만들어 주셨으며

아버지와 함께 지게를 지고 먼 산에 땔나무하러 간 기억도 납니다.

잘못하여 내가 손을 베어 나 혼자 일찍 집에 온 기억도 납니다.

아직도 원쪽 둘째 손가락에 흉터가 있습니다.

과수원 울타리에 썩은 나무와 일년초 풀을 베어

마당에 쌓아 두고 아버지 방에 군불을 땐 기억도 납니다.

 

 

해마다 여름철에 장마가 오면

마당에 물이 차고 과수원이 물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사라호 태풍이 왔을 때는 많은 손해가 있었으며

고등학교에 제 때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사과밭 중앙으로 자갈이 쌓이고 사과나무 마다

물에 떠내려와 쌓인 나무찌꺼기를 떼어내어

3년동안 땔감으로 사용했으니 굉장했지요.

 

 

초등학교 시절 장마 때는 큰 장화를 싣고 도랑을 뛰다가

실족하여 황토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다가

풀포기를 잡고 겨우 살아난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도와 일을 열심히 했지요.

겨울에는 방문 앞에 바게스에 물을 담아 둔 것이 얼면

방망이로 얼음을 깨어 대야에 얼음물을 옮겨 담아

방안에서 냉수마찰 후에 입시공부를 했지요.

나만 한 것이 아니라 누나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엄격하신 명령의 순종으로

그 당시 대구에서 명문교인미션스쿨인 '계성고등학교'수험번호 1015번으로 합격했지요.

 

 

군입대하여서는 공수훈련을 받고

인천가는 '소사'의 특수전투 사령부에 근무하며

한강에서 18 차례 낙하산으로 비행기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우리 첫 아들 명철이 최전방 근무시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산사태로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가 주께 드린 감사와

간구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그 후 3아들이 모두 제대하여 좋은 직장 얻음도

모두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 막내 청영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같은 반 짝이 생일 선물로 준 땡칠이()의 죽음이 생각나고

그리운 지난 날이 아련히 생각납니다.

 

 

꿈 속에 아내가 가끔 나타나지만

하루만 왔다가 가면 안 되느냐

부탁하고 싶습니다.손이라도 한 번 만져보았으면

아내의 손은 유난히 따뜻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압니다.

 

 

맏이가 사 준 캐리가 내 가슴팍에 두 발을 올려

내 눈의 눈물을 확인하는 걸 보니

개도 사람의 슬픔을 아는가 봅니다.

 

 

이제 살던 집은 도로에 편입되어 없어졌고

과수원은 아버지 신학교 공부를 위해 처분되었습니다.

지금은 고향에 가면 뒷산에 아버지와 아내의 묘가 있을 뿐입니다

 

 

63세에 신학교에 갔으니 아버지도 대단한 분이시라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가 지금은 천국에 가 계시며

얼마 전에 간 아내도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는 상상도 못 할 환경에서

주와 더불어 기쁨을 누리고 있으며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

그 곳에서 만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꿈 같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인간극장'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지구상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모두 떠나고 아내마저 떠나버린 지금

약간은 외롭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아내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지로 나에게는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2012.4.3() + 수시로 가필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