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사/내가 함께 한 동물들

내가 함께 한 동물들

천국백성 2011. 7. 21. 15:32

 

 

내가 함께 한 동물들

 

 하나님께서는 사람보다 저급한 동물을 창조하여 인간들과 같이 살게 하셨으며

특히 집에서 기를 수 있는 가축을 주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반려 동물로 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추억으로...

 

 

슬픈 눈을 가진 우리집 강아지 '캐리'입니다

 

 

 

 

<첫번째 동물 새퍼드 '마루'>

 

그러니까 내가 6살 때쯤 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세퍼드 개를 사오셔서 기르게 되었는데 정말 무섭고 큰 개였습니다.

과수원에 두면 도둑들도 설치지 못하고 온 면()에 소문난 개였습니다.

어느 겨울 주일이었는데 낮에 내 혼자 집에 있었는데 낯선 순경이 지나가게 되어 많이 짖었습니다.

그런데 대문 밖으로 나가서 순경의 바지가랭이를 물어 뜯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순경이 총으로 개를 쏘았는데 생식기 주위에 맞아서 저녁 때 죽었습니다.

내 어릴 때의 일이라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두번째 동물 검둥이 '메리'>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기른 개였는데 검은 색 암캐였습니다.

큰 길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따라 가면서 짖어대는 개였습니다.

그런데 나쁜 버릇이 생겼습니다.

우리 동네와 이웃동네의 사람들의 신발을 물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나서 신발을 찾으러 모두들 우리집에 왔습니다.

개집 옆에는 신발이 많을 때는 20개쯤 될 때도 있었습니다.

고무신, 운동화, 구두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물고 왔습니다.

한 켤레가 아니고 항상 외짝을 물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20리 길을 통학하였는데 늘 걸어 다녔습니다.

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는 나뿐 아니라 모두들 걸어 다녔습니다.

비오는 날은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오다 모두들 일렬로 서서 거수경례하면

마음씨 좋은 트럭 운전수가 태워 준 적도 있었습니다.

겨울철이 되면 학교에서 해가 지고 집에 오면 캄캄했습니다.

같이 오다가 친구들과 헤어지면 내 혼자가 되었습니다.

자동차 길을 따라 가면 덜 무서웠지만 먼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논을 지나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집이 보이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낮에도 혼자 가면 무서운 길이었습니다.

묘을 이장하기 위해 파헤친 곳도 있고 널판자도 여기 저기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번은 큰 맘먹고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중학생이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있었지만

공동묘지를 지날 때 무서워하지 않은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늘 다니던 길을 달려 정신없이 산등성이에 올랐습니다.

저멀리 우리 집을 향하여 나도 모르게 "메리 !" 하고 개를 불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메리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 왔습니다.

나는 메리를 안고 울었습니다. 몹시 무서웠던 나머지 개를 보자 울음이 났습니다.

세월지난 지금도 정확히 그 울음이 무슨 울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동물이지만 나에겐 사람보다 더 친근감이 가는 친구였습니다.

 

 

대학 입학시험에 "길"이란 제목으로 글짓기가 있었는데

내가 늘 다녔던 통학하던 길, 겨울에 어둡고 무서운 지름길을 택한 나에게

어둠 속을 달려와 꼬리치던 메리가 생각나는 길을 썼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세번째 동물 똥개 '메리'>

 

 

 

이분희 처녀와 결혼하여 외동중학교 근처 최부자집 별채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이도 없고 해서 입실장에서 똥개 한 마리를 샀습니다.

살도 찌지 않고 눈꼽이 생기고 까칠까칠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회충약을 먹였는데 개가 토했습니다.

보니까 회충이 뒤엉켜 수백마리가 되는 듯한 큰 무더기였습니다.

아내가 싫다고 하여 한달만에 팔았는데 팔려가는 개를 보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울었습니다.

 

  

<네번째 동물 닭 '금계'>

 

외동 역장집 별채로 이사를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자기 집에서 부화시킨 금계 한쌍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변소 옆에다 닭장을 만들고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커 갈수록 숫놈은 화려하고 멋있었습니다.

암놈은 까투리 처럼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초저녁에 금계가 날개치며 소리쳤습니다.

나가보니 족제비가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숫놈을 따라 암놈까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 며칠전에 200미터 가량 날아가는 예행연습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겨우 찾아와서 길렀는데 이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옛날 이야기입니다.

 

  

<다섯번째 동물 발발이 '땡칠이'>

 

 

 

 

 

땡칠이는 우리 집 막내인 청영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짝이 생일 선물로 준 개이름입니다.

흰색이었고 몸집이 알맞은 발발이 계통의 영리한 개였습니다.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많이 울었고 특히 밤에 시끄러울 정도로 무척이나 울었습니다.

곧 식구들과 친해졌고 끙끙대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밖에 두었고 춥거나 더울 때는 거실에 들어오게 했습니다.

점점 성장하여 집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했고

아침 산책할 때나 시장 갈 때 늘 따라 다녔습니다.

집에서 시장까지는 구석구석 오줌을 눔으로 지역을 장악하였고

성장함에 따라 지경을 넓혀 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가족을 믿고 낯선 개를 물기도 했습니다.

집에 낯선 사람이 서성대거나 접근하면 예외없이 목을 젖히고 짖어댔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대문을 열어 두면 뛰어나가 지나가는 자동차, 자전거, 아이들을 따라가며 짖어댔습니다.

모두가 무서워했고 울어버린 동네 애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 한번이라도 온 사람에게는 절대로 짖지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땡칠이가 집을 지켜주니 시장도 교회도 마음놓고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시장가면 꼭 친구집사가 경영하는 자매양장점을 가는데

어떤 때는 땡칠이가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자매양장점 집사는 아내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먹을 것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먼 곳으로 볼일 보러 갈 때는 땡칠이가 미리 알고 따라 오지 않습니다.

 

 

 

한번은 막내 청영이가 땡칠이를 데리고 차도를 건너 놀이터에 놀다가 그만 땡칠이를 잃어 버렸습니다.

찾아도 없었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땡칠이라서 크게 부르기도 뭐하고 해서 낮게 여러 번 불렀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온 식구가 골목 골목 찾아 헤메였으나 없었습니다.

누가 데리고 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튼날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에 가서 부르니

어느 구석에서 나타나 다리 사이로 왔가 갔다 하면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꼬리를 흔들어 댔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안고 울어 버렀습니다.

집으로 안고 와서 자고 있는 청영이 이불 속으로 넣어 주었습니다.

막내는 이불 속에 나타난 땡칠이를 안고 부비며 울었습니다.

온 식구가 반가와 모두 울었습니다.

탕자도 아닌 개가 집으로 왔는데 모두 울고 야단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놀러 갈 땐 땡칠이를 데리고 갔는데 땡칠이는 늘 창문쪽에 서서 밖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무엇을 보는지 부지런히 보았습니다.

밥 먹는 양은 적고 어쩌다 많이 먹으면 곧 토하고 며칠씩 굶습니다.

용변은 마당의 일정한 곳에 누고 고기를 특히 좋아하고

밥을 물에 촉촉이 말아서 된장을 약간 섞어주면 잘 먹습니다.

사과를 깍아서 잘게 썰어주면 아싹 아싹 씹어 먹으며 반개 정도는 먹습니다.

입에 넣어 먹던 고기를 주면 잘 받아 먹습니다.

불고기를 먹을 때는 기름기 많은 부분을 주는데 식혀서 먹습니다.

가족이 주는 것 외에는 절대로 먹지 않고 낯선 사람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습니다.

 

 

여름에 더울 때는 털을 깎아 주는데 직접 가위로 깎아 주었습니다.

신경써서 깎았는데도 어딘가 엉성해보이고 귀여운 땡칠이를 웃기게 만들었습니다.

삼푸와 비누로 목욕을 가끔시키는데 벌써 안으면 목욕하는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다리밑을 씻을 때는 꼭 다리를 들어 줍니다.

귀에 물이 들어 가지 않도록 조심했으나

물이 들어간 것이 의심스러우면 잠시 털게 하고 다시 작업에 들어 갑니다.

그래도 마지 않다하고 계속 몸을 맡깁니다.

다 씻으면 알아서 물기를 텁니다.

 

 

깨끗이 딲아 내 놓으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서 몸을 말립니다.

아랫 송곳니가 약간 덧니로 나 있어 매력적입니다.

눈이 까맣고 좋아라고 뛰며 까불 때는 굉장합니다.

일부러 으르렁 거리도록 만들면 정식으로 짖어 댑니다.

식구들 중에 청영이를 가장 좋아하며

여름에 상의를 벗은 체로 누워 배 위에 오라고 배를 가리키면 곧 배위로 와서 엎듭니다.

입을 쭉쭉 소리내면 따라서 쭉쭉거립니다.

 

 

땡칠이를 온 가족이 좋아하고

세 아들 모두 군에 가서 휴가 올 때까지 긴 기간인데도 모습과 옷 모양이 달라졌는데도

어찌 아는지 몸을 낮추고 고개를 들고 꼬리를 빠지도록 흔듭니다.

닭고기 뼈를 잘 씹지 않고 먹어 용변 볼 때 힘든 적도 있었고

모기에 의하여 전염되는 심장사상충에 걸려 병원신세를 진 적도 있었습니다.

동네 큰 개에 덤벼들다가 물려 죽을 뻔 할 때도 있었습니다.

 

 

땡칠이가 가장 겁내는 것은 천둥소리입니다.

천둥이 치면 겁에 질려 발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 옵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정말로 무서운가 봅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면 같이 옆에 앉아 주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어쩌다 부부싸움을 하면

밖에서 들어와서 두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구 짖어 댑니다.

나는 땡칠이가 개가 아니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오면

내 차소리를 알고서 밖으로 나와 도착했다는 신호로 짖어대고 차동차 바퀴를 냄새맡고 오줌도 쌉니다.

자동차에서 내리면 좋다고 내리뛰고 치뜁니다.

아내와 아이들보다 더 반가이 맞아주니 어찌 내가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부친이 나이가 많으셔서 목회를 그만 두시고 집에 와 계시는데

치매가 와서 밖으로 나가셨다가 집으로 찾아오지 못해서 모든 식구가 찾느라고 야단인데

어느 골목에 가니까 땡칠이가 부친의 바지가랑이를 입에 물고 당기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땡칠이가 우리 집에 온지도 11년이 되었고 사람으로치면 노인이 되었습니다.

동작이 느려지고 눈에 힘이 없어지도 만사가 귀찮아 보였습니다.

동네 큰 개에 달려들다가 물린 뒤부터는 더 힘이 없어지고

뒷다리를 잘 쓰지 못하고 물린 자리의 상처가 깊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 후 회복이 되기는 했지만 음식도 잘 먹지 않고 물만 조금씩 먹었습니다.

억지로 먹여 보기도 했지만 토해 버렸습니다.

병원에서는 심장사상충 때문이라며 곧 죽게 되니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오래 살았습니다.

 

 

주사약이 비싸다고 예방주사를 맞히지 않은 것이 죄스럽기도 했습니다.

말 못한다고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지만 미안했습니다.

결국 병원의 신세를 지게 되었고

닝겔주사를 맞도록 다리에 장치를 해와서 집에서 혈관 주사를 놓았습니다.

좀 회복되는가 했더니 주사 바늘이 빠지고 몸을 뒤틀고 괴로워했습니다.

입에 거품을 내고 똥도 쌌습니다.

죽으면 묻으려고 마당 감나무 밑에 구덩이도 팠습니다.

못먹어 야윈 땡칠이에게 물을 강제로 먹이고 약도 먹였습니다.

또 너무 더워 부채질을 2시간이나 해주었습니다.

숨을 가쁘게 쉬고 호흡이 간간히 멈추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을 자러 방으로 갔습니다. 새벽 1시 반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고 거실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잘 돌보아 주도록 당부하고 근무지인 군위 부계중학교로 떠났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땡칠이가 아이들 방과 아내가 거쳐하는 방을 모두 끙끙대며 들어왔다가

1시에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가슴이 메어지도록 아팠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명철이와 지훈이가 땡칠이를 싣고

김유신 장군 묘역의 소나무 있는 양지 바른 곳에 묻었다고 했습니다.

잘 울지 않는 명철이의 울음을 처음 보았다고 동생 지훈이가 나중에 말했습니다.

땡칠이가 가장 좋아하는 막내 청영이의 군제대를 3일 앞둔 슬픈 죽음이었습니다.

 

 

<말 못하는 개이지만 어느 가정에서 동시대에 생활을 같이했고

그 죽음을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천국에 가서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아직도 살아 있는 가족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여섯번째 동물 말티즈 '캐리'>

 

 

 

 

 

 

&amp;lt;2011.3.29일생 말티즈 숫놈 - 원래는 털이 땅에 까지 닿는 개인데 &amp;nbsp; 뱃속 털은 한번 밀어 줘야 엉키지 않아 피부병도 예방된다 하여 전체를 밀었습니다&amp;gt;

 

 

 

나는 평소에 개를 좋아합니다.

내가 한국적 풍습으로 '개띠'라서 그런지 개가 참 좋습니다.

아내를 잃고 혼자 쓸쓸하다고 두 형제가 의논하여 개를 사왔습니다.

약간은 언급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시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자신의 끼니 해결도 어렵고 귀찮은데

개까지 신경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것이 나에 대한 배려입니까? 벌입니까?

 

 

아무리 예쁘고 영리한들 이권사만 하겠습니까마는 사 온 것 버릴 수도 없고 되팔 수도 없으니 큰 일입니다.

혈통있는 개라고 값도 비싸고 음식도 고급입니다.

의료관계도 장난이 아니고 예방주사도 철 따라 맞추어야 하니 큰 일입니다.

 

 

일단 이름을 '캐리'라고 지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캐리가 된 것입니다.

 

 

내가 슬퍼하는 기색이 있으면 개도 약간은 눈치를 살피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고함지르면 구석에 숨어 몇 시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측은한 어조로 접근하면 무엇인가 '암묵적 시인'이라 여기고 꼬리를 흔들며 본색을 드러냅니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무릎 위에 와 자리 잡습니다.

큰 방에 있으면 옆에 와서 앉고 작은 방에 가면 따라와서 자리 잡습니다.

부엌에 가면 따라와서 무엇인가 받아 먹을 때까지 쳐다봅니다.

잘 때는 자기 집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내 옆에 와서 잡니다.

밥을 주고 대소변을 가리고 놀아 줘야하니 또 하루 해가 넘어 갑니다.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2011. 7. 19 ()李雨吉 執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