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일어나서 감사할 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우리은하' 가까이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 - 美 '허블'만원경이 촬영>
<들리는 '시편1편 '은 '로고스 찬양대'가 '제주성안교회'에 가서 부른 성가곡으로
李雨吉 執事(베이스)와 李忿姬 勸士(앨토)의 음성이 섞여 있습니다.>
이 세상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또 세상의 만물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과 이 세상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인간은 오랫동안 이 같은 질문을 해왔고 그 대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철학이 그랬고 과학이 그랬고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만물의 시작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구해서 나온 결과가
소위 '빅뱅이론(Big Bang Theory)'과 '진화론(evolutionism)'입니다.
많은 과학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을 통해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주는 다수의 물리적인 법칙 특히 중력의 법칙에 의해 무에서 생성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빅뱅이론이 더욱 진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빅뱅이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가설(假說-hypothesis)'입니다.
가설은 실험이나 과학적 지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입니다.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해답이 없는 가설에 불과한 빅뱅이론과 진화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
즉 정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The Bible)이고,
그 중에서도 창세기(創世記 Genesis)는
우주의 기원, 만물의 시작, 인간의 존재, 인간의 목적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근거 없는 빅뱅이론이나 진화론에 현혹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이 정답을 주셨는데도 믿지를 않고 보지를 않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한 구절에 온 우주의 신비와 인간이 지금까지 가졌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진리의 기원이요, 근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한절의 말씀으로 신이 없다는 무신론은 허무해지고
범신론은 허구이며
다신론은 허상임이 드러났습니다.
이 한구절의 말씀으로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는 무상하며
물질주의는 우상이요,
진화론은 궤변임이 밝혀 졌습니다.
이 한절의 말씀으로
인격적이고 초월적이고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모든 잘못된 철학들이 힘을 잃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 말씀의 반대편에 서있는 다른 종교와 철학들은
모두 다 어떤 형태로든지“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어떤 철학과 사상, 지식, 과학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그 무엇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놀라운 과학의 발전, 기술의 진보
어느 것 하나라도 무로부터 창조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창조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을 발견하고 정리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창조 질서와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믿고 창조 질서에 순종하고 살 때
하나님의 선한 일들이 펼쳐집니다.
옛 이스라엘의 다윗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눈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은 시편의 곳곳마다
우주의 신비, 창조의 신비 등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하고 고백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천국백성 삼아 주셨으니 평생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편 48:14)
- 달의 그림자로 인해 프랑스에 해가 지고 불이 켜졌으나 영국은 아직 낮입니다 -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 사진>
성경은 천지 창조의 설명서입니다.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만물을 통하여 보여 주셨다(로마서 1:20)고 하셨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이 상상으로 또는 추측으로 말하는 것들은 확실한 것이 아니므로 제외하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금의 지구의 구조와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 중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히브리서 3:4 에는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습니다.(요한1서 4:8)
우리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천지를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5:18)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창세기 1:1을 믿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첫 번째 말씀인 1:1을 믿는다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22:21까지
총 66권, 1189장, 31172절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못 믿는데,
어떻게 중간을 믿고 나중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창조를 믿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도 믿을 수가 있고
이 세상의 종말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매우 중요한 성경입니다.
물론 창세기의 기록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 섭리를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방법을 완벽하게 설명하기에는
우리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이 창세기의 구절구절 마다 묻어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저히 인간이 넘볼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비로움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빅뱅이론이나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경이로움과 영광을 창세기를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이른바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가운데 첫 번째 책이 창세기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기록 시기는
약 3500년 전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점인 BC 1446년부터
모세가 죽기 전인 BC 1406년 사이의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모두 모세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지도 못한 모세가 기록을 했는가?
창세기는 모세가 어느 날 갑자기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로 부터 시작된 창세기의 내용들은
긴 세월 동안 모세의 조상들을 통해 전승, 즉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전승되어 내려온 이야기들을
모세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체계적으로 기록을 한 것입니다.
물론 전승된 이야기 가운데에는 창세기에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을 성령의 영감으로 모세가 기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의 진짜 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를 영어로는 Genesis 라고 하는데,
헬라어 '게네시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창세기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창조-타락-구원’이라는 큰 틀 속에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스토리가 창세기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축복의 도구는‘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우리를 축복하시고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총 50장으로 구성된 창세기는 4부작으로 이루어졌는데,
1부는 태고사, 2부는 아브라함 이야기,
3부가 야곱 이야기, 4부는 요셉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입니다.
우리가 지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2011년 6월 14일' 바로 지금 이 시간과 '대한민국 경주'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고,
또 공간이 없어도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심으로 세상의 처음, 세상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태초'라는 시간이 본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시간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영원은 시간을 초월해 있는, 시간과는 무관한 때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는 우리 사람이나 우주 만물은 다릅니다.
영원속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과 우리 사람들이 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시고
그 첫 번째 시간을“태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시간을 지으셨다면,
시간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우리의 시간도 본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을 각 사람의 분량대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100년의 시간을 또 어떤 분들은 70년, 50년, 40년을 받기도 합니다.
저의 아내 이분희 권사는 60년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지금 하나님께서 만드신 낙원에 가 있습니다.
적어도 15년 이내에 만나게 됩니다.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달란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의 달란트.
그저 나만을 위해서 내 욕망만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간으로,
하나님을 위해 또 이웃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될 줄로 압니다.
그래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태양계의 천체들 - 태양은 너무커서 여기에 나타낼 수 없음>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태초”라는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동시에 우주만물과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드셨습니다.
그 공간이 창세기 1:1의“천지”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천지”라고 한 단어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는“하늘”과“땅”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하늘”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사먀임, Hassamayim)'은
복수형으로 그냥 하늘이 아니라‘하늘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NIV영어 성경은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하늘들”은 여러 하늘을 가리킵니다.
첫째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공기와 구름이 있는 하늘이지요.
두 번째는 지구 밖에 우주 공간의 하늘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하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바로 천국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3층천'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할 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인 세계까지도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광대하신 하나님, 무궁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만 해도 무진장하고 광대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얼마나 더 크고 더 광대하겠습니까?
그 모든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만큼 광대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늘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땅도 만드셨습니다.
우리말“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예레츠 Yerets’라고 합니다.
이 단어도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밟은 대지, 땅을 가리킵니다.
두번째는 우주적인 의미에서의 땅을 가리킵니다.
하늘과는 반대 개념으로 모든 땅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현상세계, 물질세계, 즉 이세상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한 쌍으로 기록을 하면,
모든 세상, 모든 공간, 모든 세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모든 세상, 모든 공간,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땅을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땅 주인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땅도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땅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하나님”이십니다.
이때 하나님은‘엘로힘’(Elohim)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엘’(El)의 복수형입니다.
엘로힘으로 기록할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하나님은‘엘로힘’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권능이 얼마나 큰가 하면,
하늘과 땅을 능히 지으실 정도, 온 우주만물과 시간을 창조하실 정도로 큰 권능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엘로힘,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창조하시니라”를 살펴봅시다.
이때 사용된 히브리어가 ‘바라’ (Bara)인데 ‘ 창조하다’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창조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런 재료 없이 창조하는 것, 소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를 이용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든, 유에서 유를 창조하든 우리 말에는 구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바라’라고 하는 단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만 사용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바라'는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무에서 유로 창조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왜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시간과 공간을 만드셨을까요?
우리 인간들을 살게 하시려고요? 물론 맞는 답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동거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해,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시간의 주인,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정확하게 생명이 살 수 있도록 거리와 속도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자전(시속 1,670Km)과 공전(시속 108,000Km)을 계속하는데
그 속도는 무서운 속도입니다.
움직이는 지구가 워낙 크고 진공 가운데 움직이기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만약 지구의 공전이 Life Zone 즉 생명선을 벗어나게 된다면
지구상에 생명체는 순식간에 다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극지방의 얼음이 없어지고 다 타죽게 될 것이며
조금만 멀어진다면
추워서 다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생각하면
이 거리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태양계 안에 이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태양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지구는 그 거리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아직까지 무사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저절로 일까요?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이니이다."
(시편 119:91)라고 하셨고
약 3,500년 전에
욥을 통하여
“누가 그 도량(무게, 거리, 부피, 크기 등)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가 질서있게 움직이게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와 움직임과 무게로만 가지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 생명체에게는 태양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태양이 빛을 내기 위하여 폭발할 때에
태양풍이 불면서 여러 가지 고에너지를 지닌 방사선들이 지구를 향해 달려옵니다.
특히 자외선이 들어오는 경우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것들을 막아주지 못하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다 죽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구의 옷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고 휘장같이 하늘을 치셨다"고 하셨으며(시편 104:2)
또 약 2,6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다"(이사야 40:22)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마지막 때가 되면
옷처럼 낡아져서 의복같이 갈아입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편 102:25-26)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예언의 말씀들이 오늘날에 벌써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기권 가운데 성층권에 오존층이 있어서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02년이고
오존층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을 발견한 것은 1979년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오존층이 파괴되기도 전에 기록되었으니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욥기 28:25-26에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와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하셨습니다.
바람의 경중을 정하셨다는 말씀은 공기의 무게를 다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공기의 무게가 똑 같으면 우리가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저기압과 고기압이 없어서 공기의 순환이 없을 것이고
산소의 움직임도 없을 것이므로 죽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공기 중에 질소가 78%, 산소가 21%, 나머지가 1%라고 합니다.
질소는 불활성으로 불에 타지 않는 것이므로 불이 나면 끌 수 있습니다.
만일 산소가 78%가 된다면 도저히 불을 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산소의 양이 적어도 많아도 살 수가 없습니다.
공기 중의 21%의 산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적당량입니다.
아무 부족함도 없이 적당한 양이라고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흡이 있는 자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드려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시편 150:6)
<공중에 태풍이 형성되었다>
생명의 뿌리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물은 어디서 왔을 까요?
욥기 28:25에 보면
“하나님께서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구상에는 물이 약 70%가 있는데
우리 사람의 몸의 구성분 중에 있는 물의 양도 약 70%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더우면 땀을 흘려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방출하여 체온을 조절해주고 있는 것이 물입니다.
몸 안에 1-2%의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게 되어 다시 물을 보충하라는 신호가 옵니다.
사람은 손발이 있기에 물을 보충하지만
지구는 어떻게 물을 보존할까요?
욥기 38:10에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하늘에 옷을 만들어서 물이 지구 밖으로 못 나가도록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열은 밖으로 방출시킵니다.
대기권 중에 가장 아래쪽에 있는 층이 대류권인데
지상에서 대류권까지 매 100m 올라갈 때마다 0.65℃정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대기권의 두 번째 층인 성층권은 반대로 아래쪽이 온도가 낮고 위쪽이 온도가 높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기권 위와 성층권 아래쪽의 온도가 비슷하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의 기압차 때문에 구름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일정한 높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를 타고 구름위로 날아가면 밑에 구름이 있음을 봅니다.
물이 가늘게 증발하여 구름까지 올라오면
구름이 그 물을 흡수하여 다시 땅으로 내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중요한 것은 식수뿐만 아니라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요? 누군가 정하신 질서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질서있게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무시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에서
마치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도 못하게 되고
전부 하나님께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하나님은 이기적인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을 최고로 존중하고 가장 가치있게 여기는 것과 인간의 행복과는 전혀 상반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인간의 행복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니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지혜를 가지고 승리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부족한 교육이나 인생의 경험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때에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가난하다고 환경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과 금이 주님께 있고
사람이 계획하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운행하시며 보존하고 계십니다.
하늘에 태양이 땅을 비추고 있고 구름이 떠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창밖의 단감나무가 바람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사 준 말티즈가 내리뛰고 치뛰고 있으며 가끔 짖기도 합니다.
저는 원고를 교정하고 있고요.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장차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
어찌하여 저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알게 하셨으며 천국 백성 삼으셨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자다가 일어나 감사할 일 아닙니까?
말해보십시오. 자다가 일어나 감사할 일 아닙니까!
<지구 상공에 있는 우주정거장 - ISS>
2011. 6. 14 (화)
李雨吉 執事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