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및 교리/하나님의 우주창조

하나님의 우주창조

천국백성 2011. 2. 23. 11:43

 

 

 

 

하나님의 우주 창조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우주 중의 은하계 일부

 

성경 구약

 

창세기 1장 1

'In the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universe, the earth was formless and desolate.

the raging ocean that covered everything was engulfed in total darkness,

and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water.

 

처음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은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황량했다.

모든 것을 덮고 있었던 깊은 은 캄캄한 어둠에 뒤덮여 있었고

물 위에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계셨다.

 

 

 

히브리서 11장 3

It is by faith that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created by God's word,

so that what can be seen was made out of what cannot be seen.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 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에게 지금 보이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시편 336절에

The Lord created the heavens by his command, the sun, moon, and stars by his spoken word.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시고 입김(성령)으로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태양계의 혹성들  (태양은 너무 커서 여기에 싣지 못함)

 

고린도전서 8장 6

Yet there is for us only one God, the Father.

who is the Creator of all things and for whom we live;

and there is only one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all things were created and through whom we live.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분이 계실 뿐입니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는 그를 위하여 삽니다.

그리고 한분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을 통하여 만물은 창조되었고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사실이

인간의 경험이나 혹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인간의 직관으로 가능할까요?

이것은 인식론적인 문제입니다.

즉 계시의 도움없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창조하셨다고 생각을

사람이 과연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두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참회록'에서는

하나의 피조물만 보아도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아리스토 텔레스 철학을 인용했습니다.

즉 세계는 변하는 것이며 변하는 것은 무한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세계는 창조되었다는 비교적 간단한 논리로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계시의 도움없이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쓴 '신의 도성'이란 책에서는

창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정말 (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창조설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창조 신화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창세기의 기록을 하나의 신화라고 말하며,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의 서술로 보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철학에도 '길가미스' 신화에도 창조의 신화가 있고

플라톤의 철학에도 창조의 이야기가 있으며

중국의 신화에도 창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만큼

성경에 나오는 창조란 것이 그렇게 독특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도전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반지름 6,370Km, 자전방향:반시계방향, 속도 : 464m/sec공전방향 : 반시계방향, 속도 : 29.8Km/sec 자전축기울기 : 23.5'무서운 속도이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함은 지구가 너무 크고 속도가 일정하기 때문그러나 태풍과 바람은 지구 자전의 영향을 받음)

  

기독교의 창조관은 무엇보다도 '무(無)로부터의 창조'입니다.

다른 종교에 나오는 창조는 창조는 창조이지만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한다는 사상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길가미스' 신화에 보면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벌써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원물질이 있었고

거기에서 질서있는 이 우주가 생겨났다고 되어 있고

플라톤의 유명한 이야기에도 '데미우르고스'(Demiurgos) 라는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기 이전에 ' 물질'과 '형'(이데아)이 있었다고 합니다.

데미우르고스가 한 일은 이미 있는 물질과 이미 있는 형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주어진 물질은 무질서인 '카오스'이고 거기에 질서인 '코스모스'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이 갑자기 나왔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란 것은 항상 있는 것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사람이든지 동물이든지 무엇이든지를 만들어 낸 일은 없습니다.

경험과 논리를 초월한 상상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도저히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라는 것이 마치 그 자체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無) 그런 ''()가 아니라 간단하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지식은 항상 유추적이고 인적입니다.

 

인적이란 말은 신을 인간의 형태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신에 대해서 우리의 형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희랍의 유명한 철학자 '제노파네스' (Xenophanes)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신이란 것은

인간의 경험과 인간의 상상력 이상으로 넘어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잘 생각해도 의인화의 정도를 넘어가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계시에 의하지 않으면 ''()로부터의 창조라는 것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성경의 창조관은 인간 상상의 산물이 될 수도 없고 인간 소용의 대상도 될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로부터 창조해냈다는 생각은 인간의 산물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어둠이 그 위에 덮여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는 것이

'카오스'상태라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해석이 마치 히브리적인 것처럼, 곧 희랍적이 아닌 것처럼 해석하는데

사실 그것은 매우 희랍적인 성경 해석인 것입니다.

히브리 사상에는 전혀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부터 ''()를 창조했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근본적인 이질성을 말합니다.

범신론에서는 신과 인간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주 전체가 신이요, 따라서 인간도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나 힌두교만이 범신론이 아니라, 사실은 성경의 창조설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종교는 범신론입니다.

서양 철학에서 헤겔같은 철학자는 자기가 기독교적 철학자라고 했지만 사실은 범신론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는 신과 인간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범신론이라는 것은 신비주의와도 관계되어 있고

낭만주의도 범신론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문학자 괴테는 헤르더의 영향을 받았고

헤르더는 범신론 철학자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매우 낭만주의적인 이유는

우리의 종교가 사실은 근본적으로 범신론적 세계관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것은 근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 동질성을 인정하는 사상입니다.

 

 

성경의 창조관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하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의 세속화 '입니다.

'자연의 세속화'라는 말은 자연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쓸 때쯤에는 주위의 사람들은 다 범신론이거나 다신론이었습니다.

해와 달, , 바위도 모두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그것들이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자연에 신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연은 그렇게 거룩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신비로운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사람이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진 작가가 강원도에서 찍은 '안드로메다' 은하

 

성경의 창조관은 새로운 시간관을 제공합니다.

시간관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순환적인 시간관'이고

또 하나는 '직선적인 시간관입니다.

이 두 시간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한 사람은 어거스틴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에서' 순환적인 시간관'이란 시간은 영원히 돌고 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세상에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는 생각이 순환적인 시간관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 사상에 공통적인 것입니다.

힌두교에서도 그렇고 불교에서는 더욱 그렇고 심지어는 유교에서도 그렇습니다.

 

 

희랍 신화에서는 영혼을 원으로 표시했습니다.

원이라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데 이것은 영원을 나타냅니다.

순환적인 시간관은 전도서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옛날에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옛날에 있었던 것이 다시 돌아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그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상황을 서술한 것입니다.

 

 

영원한 회귀, 이것은 니체 사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고

니체만큼 철저하게 순환적인 시간관을 믿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환적인 시간관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새것이 없다는 것이요,

따라서 과거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가 현재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것은 유교에서입니다.

유교는 시간이 갈수록 인간이 타락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사학자 '플루타르크''시간은 인류의 원수다' 라고 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점점 타락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창조의 교리에 의하여 '세계는 영원한 원으로부터 끊어져 나갔다.

창조는 시작이 있으니까 끝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직선적인 시간관'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선적인 시간관에서는 비로서 발전이라는 것이 가능하며

발전이란 과거에 없었던 것이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요,

점점 나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환적인 시간관에서는 발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발전이라는 것이 없으면 역사가 불가능합니다.

자연에는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같은 것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요소가 존재했는지

아니면 불가피하게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 있었는지 알아 봅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이 원해서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한다는 것은 의지를 전제로 합니다.

 

의지란 원인이 없어야 의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창조하실 이유가 있어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에서 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외에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부르는데 이 자유의지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희랍 철학에는 자유의지라는 관념이 없습니다.

오늘날 철학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사상은

성경으로부터 도입된 것이지 희랍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희랍에는 모든 것이 다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랍의 영향을 많이 받은 중세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는 것으로 늘 가르쳐 왔습니다.

그것을 실체주의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인격자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연법칙도 아니고 어떤 물질도 아니며 인격체이십니다.

인격체라고 하니까 우리는 하나님도 사람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본래 인격이라는 말은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도 상대적인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어떤 사람의 신관과 인간관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와 직접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인들의 인간관은 사람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격자로 보는 것입니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 태풍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무'(無)에서 창조하셨습니다.

''()라는 말은 성경 본문에는 없지만 '창조하셨다라는 말과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는 말씀이 확실히 이것을 증거합니다.

'혼돈'으로부터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혼돈' 그 자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태초에 이미 있는 물질을 가지고 질서가 있는 '코스모스'를 조성한 것이 아니라

''()에서 창조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

as the scripture says

" I have made you father of many nations."

So the promise is good in the sight of God, in whom Abraham believed-

the God who brings the dead to life

and whose command brings into being what did not exist,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상 이를 부정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영육 이원론'에 입각한 노스틱주의, 마니게주의신지학자들자연주의자들범신론자들유물론자들은

모두 '무'(無)에서의 창조를 부인했습니다.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유출된 것이 아닙니다.

신의 본질과는 구별된 물질로서 구성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물질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플라톤''()를 혼돈된 영원한 물질로 이해했고

에리게나(Erigena)는 심지어 ''()를 신의 자리까지 높였는데

모든 개념과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헤겔은 이것을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비존재함'과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변증법적인 개념의 혼돈을 받아들이지 않고

''()를 순수한 부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요컨데 이 세계는 없는 것 가운데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장 3절에 확실히 말하기를 '지은 것이 하나도 말씀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계시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계셨습니다.

말씀은 시공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태초'라는 시간도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만물이 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점진적으로 수만년이 걸려 지은 것이 아닙니다.

 

My hands made the earth's foundation and spread the heavens out.

When I summon earth and sky, they come at once and present themselves.

 

내 손으로 땅의 기초를 놓았고 하늘을 펼쳤다.

내가 땅과 하늘을 부르기만 하면 땅과 하늘이 내 앞에 나와 선다.(이사야 4813)

 

 

이 말씀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인격적인 존재로 계시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과 동질이시며 동질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본체이시기 때문에 동등하십니다.

 

 

말씀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와같이 인격적인 말씀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자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태초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장차 오실 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씀(로고스)은 인간의 정신 세계에 있는 사상이나 사유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우주 정거장에서 내려다 본 지구

 

만물이 '하나님의 지혜'로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신이 창조의 주역을 맡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만상이 '하나님의 입기운' 으로 이루어졌고 그 신으로 하늘이 단장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그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편 30)

성령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 매 우리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은 고요히 비둘기 같이 내리기도 하시지만 강한 바람같은 소리와 함께 불같이 임하시기도 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8사도행전 2장 2)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스가랴 46)권능이 임하시면

곧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사도행전 18)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의 권능이 단순히 자연 만물 속에 있는 능력과는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만물 속에 신성과 영원하신 능력이 분명히 보이도록 계시되지만,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0-23)

 

 

백합화 한송이를 기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은 아닙니다.

태양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매일같이 나타나게 하시지만 태양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 빛이 아들이거나 그 열이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도 말씀과 같이 인격적인 신이십니다.

그는 어디든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면서도 그 곳에 또 오십니다.

그는 위에서 내려오시는 권능이면서도, 각종 방언을 말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생명의 원인자이십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로 하여금 잉태케 하사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창조의 능력으로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성도들의 심령에 계신 그는 이미 자는 성도들의 몸을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통달하시되 하나님의 깊은 곳 까지 이르십니다.

그는 단순한 능력이나 생명이 아니라 지혜와 모사가 그에게 넘치십니다.

아무도 성령을 지도하거나 그를 가르칠 자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얼로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그는 천사나 '데미우르게'와 같은 다른 중간 존재의 도움없이 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어떠한 피조물의 도움없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홀로 직접 지으셨습니다.

직접 창조하셨다고 하나님 자신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 노스틱 주의자들이나 신플라톤 주의자들은 물질이 악한 줄 알고

하나님께서 직접 천지를 창조하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 중간 존재를 많이 두었습니다.

소위 '애온계'가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애온'중에 로고스가 으뜸되는 위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완전하여도 만물을 지을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더우기 모든 우상들은 천지를 창조하기는 커녕 관찰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만드신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은 물론 독생자와 성령이 제외되지 않습니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홀로 하나이신 독생자와 함께, 성령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각각 창조하신 것이 하나로 묶여진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엘로힘'(복수형)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하신 것이 곧 말씀의 지혜요, 성령의 모사였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곧 말씀의 권능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전지 전능한 능력이요, 지혜였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그 신성이 동질일 뿐 아니라 동등이시기 때문에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만 동격은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로 변한다든지, 혹은 아들이 그 모양을 바꾸어 성령이 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동질, 동등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신성이 동질, 동등이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하나이고 한분은 아닙니다.

셋이면서도 한분같이 뜻하시고 하나같이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이와같은 삼위 하나님은 천하에 오직 유일하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삼위 하나님은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분을 합하여도 한 분보다 크지 않습니다.

신성의 충만하심이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홀로 하나이신 성령은 일곱 영이시기 때문에

그 신성이 성부와 성자 못지 않게 부요하시고 충만하십니다.

이러한 삼위 하나님은 그 영광이나 권능이나 지혜나 인자하심이 동등하시고,

동질이시기 때문에 홀로 하나이십니다.

 

 

 

말씀없이는 하나도 지음받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만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말씀에 의하여 유지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말씀은 '지식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을 밝히고 새로 지으시는 종교적인 역사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십자가의 도' 외에는 달리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일반 학문과 신학과의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이나 만물을 통해서 그 원인과 목적을 자세히 살핌으로서

신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러운 일이 만물 속에 가득차 있지만

'제일 원인'이 곧 이라고 하는 자연 신학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물이 창조된 것인 줄로 확실히 인식한다 할지라도

그 창조주가 누구냐라는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오직 특별 계시에 의존치 않고는 신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우주 만물은 신의 지혜를 아는 책입니다.

만물신의 생각이 밖으로 나타난 화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신은 자의식 속에 있는 지혜가 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세계는 그것이 크고 작든 간에 하나의 아름다운 책이며

이 가운데 보이지 않는 신성의 능력이 보이도록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써 넣어야 할 노트는 아니고 신이 마치 글로써 쓰신 것처럼

이에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가 힘써 읽어야 할 책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해석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존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가 아름답고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는 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하늘과 땅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지음 받았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권능으로 지음받았음을 믿습니다.

신학은 오직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And eternal life means to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to know Jesus Christ whom you sent.

 

그리고 영생은 오직 한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