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왔는데...
때늦은 폭설로 장독대 두껑이
쌓인 눈으로 무거워도
봄은 왔습니다.
이권사가 남해섬에 여행갔을 때
예쁘다고 가져와 심어 놓은 섬꽃도
새싹을 내밀고 봄은 정녕 왔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이면 님의 생일인데
정작 님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견딜만한 시련을 주신다고 하셔 놓고
이렇게도 큰 슬픔을 주십니까!
주님, 너무 하십니다!
온 땅에 슬픔 가득하고
밤도 낮도 없이,
이방에 있어도 슬픔이요
저방에 가도 슬픔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세월 지나면 잊어진다 했는데
사람들의 말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이권사!
집안 일은 모두 내가 할 터인데
그냥 있어만 주었으면..
자전거 타고 앞에서 내달리던
'새벽기도회' 가던 모습이
아련하오.
'엔젤보이스'의
앨토 파트는 어쩔 작정이오.
경로대학
어르신네들은
어쩔 작정이오.
매일 밤 '말씀기도회'에 참석하고
돌아 올 즈음의 대문 여는 소리는
이제 님이 없어 들을 수 없습니다.
옥상의 두 개의 큰 독에
지난 가을에 사 넣어 둔 사과는
아직 가득한데
님은 없습니다.
앞 화단에 묻어 둔 백김치는
아직 가득한데
님은 없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혹시 중한 병에 걸려
겪어야 했을 고통이 없었으니
주의 은혜입니다.
나이 많아 거동이 불편했다면
가족의 짐이 되었을 텐데
짐을 지우지 않음도
주의 은혜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그리움에 잠 못이루는
남은 자들에게
님이 계시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 주심도
주의 은혜입니다.
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삶의 거처를 옮겼을 뿐이고
지금 천국에 현존하심을 진작 알게 하심도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님이 계시는 곳에서
주와 더불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한 소망을 주심도
주의 은혜입니다.
슬플 때 찬송하게 하심도
외로울 때 기도하게 하심도
주의 은혜입니다.
님이 있었던 뜰에
매화, 자두 꽃망울이 가득한
봄은 왔는데
정녕 님은 없습니다.
주님!
없습니다!
2010.3.13(토요일) 오후에
이분희권사를 그리워하며
이우길 집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