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원래 성전이 있었던 곳은 사진의 중앙의 왼쪽부분이다. 중앙의 황금 돔이 있는 곳은 로마 군인들의 주둔지였다.
중앙 돔의 앞쪽 언덕 밑에 있는 무덤들
예수님의 눈물
-----------------------------------------
눅 19:41-46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 예루살렘 성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 너는 모르고 있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 예루살렘 성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5 성전에 들어 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
『가까이 오사』 (헬:엥기조-큰 사건이 다가 옴) 는 성 가까이에 오셨다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성의 훼파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3번 우셨다.
1 나사로의 죽음, 2 성을 바라보시면서,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3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셨다.
한편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다.
무엇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 사는 유대인들은 일 년에 적어도 한번은 이곳에 오게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온의 대로였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적으로는 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유대인으로 자라나셨다.
예수님이 12살이 넘어서부터 육신의 부모를 따라 일년에 한 번씩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셨다.
예수님에게도 예루살렘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성전을 사랑하셨다.
-----------------------------------------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의 성전이 예수님의 마음을 실망시켰다.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고 있는 성전 지도자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했는데,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이 성전 지도자들이었다.
멀리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신 후, 예수님은 성으로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상을 뒤엎으셨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고의적으로 흠잡고 내침으로
백성들은 다른 제물을 구입해야 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 안에서 제물을 매매하는 자들과 결탁하여
이익을 챙긴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임박해 있는 예루살렘의 재난 때문에 우셨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재난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 흘린 눈물이었다.
성경 원문에 의하면 『흐느끼는 눈물』이 아니고,『꺼이 꺼이 소리내며 우시는 통곡』이셨다.
화평이나 평화가 사라짐에 대한 눈물이셨다.
화평(롬5:1)이란 단순한 걱정, 염려, 문제가 없는 상태의 의미일까?
이는 관계 개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도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바로 그 평화를 위해 오셨다.
또 부활 후에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 『평강하냐?』고 물으셨다.
-----------------------------------------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은『우리를 위해』즉 휴머니즘적인 죽음이 아니고
죄 없으신 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가 죽어야 했는데『우리를 대신해서』죽으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 아멘 -
-----------------------------------------
2020.1.21. 오전 9:4
이우길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