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사람은 왜 서슴지않고 죄를 짓는가?

사람은 왜 서슴지 않고 죄를 짓는가?

천국백성 2016. 2. 4. 13:37

 

 

 

사람은 왜 서슴지 않고 죄를 짓는가?

악한 일을 하는데도 바로 벌이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전도서 811)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죄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는가?

하나님께서 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허용하신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고 죄가 아니고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 죄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족속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 때에는 전멸시키지 않는 것이 죄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다윗도 사람 죽인 살인자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다.

다만 중한 죄, 중하지 않은 죄. 많은 죄, 적은 죄가 구분될 따름이지 모두 죄인이다.

그 죄를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를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지만 죄 값은 다 받는다.

먼저 육신의 죽음이 오고, 죄 값으로 건강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죄 값이 치러지고,

자기가 죄 값을 받지 못하면 후손이 받게 된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울 사도나 자신을 비교해볼 때

하나님께서 똑 같게 처우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일이 된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의도하는 대로 움직이는 천사가 아니고,

완전한 자유를 가진 영체로 만드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의도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천사를 창조하셨다면

그것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소유한 천사가 아니고 소위 '로봇천사'를 만든 셈이다.

그 피창조된 천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는 창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천사 루시퍼와 그를 따르는 무리의 천사가 사탄과 악마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 속성에서 그것을 허용한 셈이다.

천사 루시퍼가 옛 뱀으로 들짐승에 들어가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과 하와를 꾀어 죄를 조성했고

후손인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로 유전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제시한 것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을 구별하기 위함이고,

완벽한 자유의지를 준 것이다.

피창조된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악과를 따 먹지 않을 수도 있다.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칠 수도 있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훔치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에 보응하는, 즉각적인 벌을 내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을 죽이면 그 벌로 즉각적으로 자기 자신이나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즉각적으로 죽는다면 누가 사람을 죽이겠는가?

죽이면 죽는 것이 뻔한 일인데 누가 죽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벌을 내리시지 않는 이유도 있다.

만약 즉각적인 벌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사람을 '로봇화'시킨다.

환언하면,

즉각적인 벌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착해 보이는 데도 병에 걸려 많은 고생을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죄가 많아 어렵게 사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데도 겉으로 보기에 잘 살고 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작금의 현안이다.

 

 

'코헬렛'이 말한다.

 ) '코헬렛'=() 설교자, 교사, 총회의 인도자<불러모은 군중들을 향해 진리를 전파하는 자, 솔로몬>

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확실히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다 알지 못 한다고 하셨다.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고 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신의 은총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에디슨이 많은 발명품을 남기고 죽었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명품을 귀한 것으로 알고 그를 칭찬하고 존경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지

죽은 에디슨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실질적으로 없다.

죽은 에디슨이 칭찬을 듣고 기뻐할 수도 없다.

칭찬하는지 욕하는지도 모른다.

에디슨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 수고를 하는가?

먹고 싶은 것 먹고, 마시고 싶은 것 마시고,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 즐겁게 살아라"고 '코헬렛'은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젊을 때 창조주를 찾으라.

 곧 나이 들면 기억이 몽롱해지고 만사가 귀찮을 때나 오니

그 때에는 하나님 찾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것 하라.

그러나 하나님 두려워하고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지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심판하신다.

 

나는 또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데,

살아있는 생명체의 세포 하나하나에 다 관여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생명체에 부여하신 법칙에 따라 관여하시며

수시로 그 부여하신 법칙을 수정하시는지 알고 싶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 모래알이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감포 앞바다 솔밭 가까이에 있는 해안의 모래 중에

정해진 몇개의 모래알이 밀려오는 파도에 몇 번 회전하여 구르고,

밀려가는 파도에 어느 방향으로 몇 번 회전하는 것 까지도 다 관여하시는지 알고 싶다.

 

 

나는 또 생각해 보았다.

이 넓은 우주 가운데 태양계 속의 지구라는 혹성에 인간을 창조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데 이 지구에만 국한함은

이 넓은 우주가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지구 말고 다른 곳에서도 우리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만드셔서

복수의 우주 계획으로 경영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 인류에 대한 계획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천국의 보좌 앞에 있는 짐승 모양을 한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외치는 짐승 모양의 그 그룹의 출신이

하나님이 만드신, 다른 곳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2016.2.4.() 13:15

이우길 집사